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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l 21. 2024

894. 잠들기 전에 읽는 쇼펜하우어(3)

예저우著, 오렌지연필刊

 ‘잠들기 전에 읽는...’, 제목만 봐서는 수면제 역할을 할 것 같았지만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라는 책도 발간한 것을 보면 출판사의 단골 문구다. 

 전체 내용은 철학서보다는 ‘인생사용설명서’에 가깝다. 또한 어렵지 않고 친숙하다.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고독을 즐기는 법을 익혀라

 지혜로운 사람은 늘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자신의 고독을 향유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늘 고독을, 한가로움이 주는 무료함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매번 저급한 유희로 자신에게 잠깐의 쾌감을 주려한다.

 쇼펜하우어의 고독과 적막함은 단기가 아닌 평생이었다. 부친은 17세에 자살했고 아내, 자녀가 없었으며, 어머니와는 20세에 절연했다. 환경도 고독했으며, 그가 몸담았던 철학계에서도 외면받고 냉대받았으니 정신적으로도 고독했다. 이러한 쇼펜하우어 관점에서는 사람의 일생이란 고통과 무료를 오가는 시계추 같았다.

 많은 사람들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임에 나가고, 술 마시고, 잡담을 나누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고독이 다시 불쑥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듯 고독은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독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기꺼이 고독을 선택한 사람은 늘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며, 이성적이고 엄격하게 자신을 채찍질함으로써 자아를 완성시켜 갈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마음의 평화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무료한 사교 모임을 포기하는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고독을 즐기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고독하게 지내는 시간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자신의 특기를 개발하는 시기이다. 


짧은 인생, 감사히 소중하게 여기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고 느끼게 된다. 마치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말이다. 일정 연령대에 들어서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년이 후딱 지나가네!’하며 긴박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이해하기 위해, 개인은 반드시 길고 긴 삶의 길을 걸어봐야 한다.’라고 지적한 것이다.

 아직 젊을 때, 아직 인생의 절반이 더 남아 있을 때, 인생이 얼마나 짧은 지를 깊이 깨닫고 시간을 귀히 여기며 아껴야 한다.


순전히 독서로만 배운 진리는 절대 내 것이 아니다

 순전 독서로만 배운 진리는, 우리 몸을 놓고 빗대자면, 의족, 의치, 밀랍으로 만든 코, 이식한 피부와 같다. 반면 독립적 사색으로 얻은 진리는 우리의 타고난 신체와 같다. 따라서 독립적 사색을 통해 얻은 진리만이 비로소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독서하는 사람은 책 속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정수만 받아들인다. 또한 거짓은 버리고 진실만 추려내며, 질의하고 판단한다. 이는 일련의 사색과정이며 실천과정이다. 이를 통해 얻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자기 것이 되며, 쓸모 있다.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이다

 어떤 일을 하든 안 하든 우리는 거의 대부분 타인의 시선부터 고려한다. 우리가 겪은 걱정과 두려움의 절반 이상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데서 나왔음을 알려면, 우리 자신을 자세히 관찰해봐야 한다. 타인의 시선은 우리에게 쉽게 자존심(왜냐하면 이것은 병증처럼 민감하기 때문이다), 모든 허영, 자부심, 과시, 체면에 상처를 입히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외부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관점을 고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의 생각과 대다수의 생각이 다를 때 시련이 닥친다. 만약 권력자의 생각과 배치된다면 시련의 크기는 더욱 커져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의지로 모든 간섭에 저항하고 견뎌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독립적 인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행동은 일종의 큰 도박일 수 있다. 자기 의견이 진리라는 답안이 나오기 전까지 진리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답안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사색과 실천,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 완벽을 기하는 노력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쩌면 기다림의 끝이 자신의 바람과 상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의 의의만큼은 관철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체로서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주인이 되도록 한 것이므로 마땅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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