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 손녀의 애착토끼인형을 구했더니 네덜란드 여행목적이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시장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암스테르담시내 ‘Albert Cuyp(알버트 카위프)’시장은 상설점포도 있지만 성남 모란시장처럼 가설시장이 들어서는 곳이라 한다. 16시가 가까워져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장은 17시까지 오픈하는데 한두 곳은 벌써 철시준비를 하고 있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어물전 비린내가 진하게 퍼진다. 대구, 도미, 오징어, 새우, 게...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생선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생선크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네덜란드는 여자건 남자건 기골이 장대한데 생선은 우리나라보다 작은 편에 속하고 붉은 도미들은 방생사이즈로 귀엽기까지 하다.
시장은 언제나 생선비린내보다 진한 삶의 내음을 풍긴다. 네덜란드 시장도 마찬가지로 상인과 고객들의 웅성거림과 땀냄새, 비린내, 혹은 와플의 고소함까지 어우러져 살아있음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알버트 카위프 시장은 용인 김량장처럼 점포들이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어 구경하기 좋다. 왼쪽을 보고 다시 돌아 오른쪽을 보면 된다. 시장 길이도 1킬로 정도로 김량장과 비슷하다. 길가 건물에 있는 정규 상점들도 노점을 운영하는지 노점에는 더 많은 상품은 안쪽에 있다는 표시가 여럿 있으며 혐오식품 파는 곳은 없어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 어물, 가짜 귀금속, 각 나라 토속음식, 싸구려 신발과 옷가지가 있으며 몇몇 가게의 구색은 같아 이것까지 한국 5일장과도 비슷하다.
빨갛고 노란 형광색 신발이 많이 걸려있어 무엇인가 봤더니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모양과 똑같이 만든 신발들로 나무가 아닌 크록스신발같이 화학수지로 만든 제품이다. 색상이 시골스러운데 묘하게 한국 5일장 분위기와 맞아 들어간다.
타코야키도 팔고 비릴 것 같은 haring(청어절임) 샌드위치도 판다. 타코야키, 치킨, 아이스크림, 와플은 시장의 인기음식인 듯 가게 앞이 사람들로 붐빈다. 한국 5일장에 가면 빠지지 않는 먹거리가 핫도그, 호떡, 도넛이듯 네덜란드 길거리음식에 빠지지 않는 것이 haring, 와플, 아이스크림인듯하다.
와플과 아이스크림은 먹어봤지만 haring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핫도그 빵에 통으로 소금에 절인 청어를 넣고(그래도 청어 머리와 내장은 제거했다) 양파, 피클을 넣어 먹는다. 비린내가 거의 없다는데 보기만 해도 비린내가 입안에 가득할 것 같아 용기도 없고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5시가 가까워오자 파장분위기가 고조되어 상인들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들도 정리하고 술 먹으러 가겠지? 이곳은 일을 언제 하는지 모르겠다. 음식점을 제외한 가게들은 5시에 문을 닫는다. 그래도 박물관은 6시에 문을 닫지만 5시 40분 정도 되면 사람들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음식점은 낮부터 항상 붐빈다. 물론 브레이크 타임이 있지만 낮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맥주와 포도주를 기울인다. 예약이 없으면 맛집으로 소문난 평점 좋은 집에는 가지 못하며 가게 앞은 사람들과 자전거로 넘쳐난다. 네덜란드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일을 적게 하고 저녁을 만끽하는 것이 아닐까?
퇴근시간이 되면 자전거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기에 자전거행렬이 장관이다. 차도, 자전거 길, 인도가 구분되어 있으며 자전거가 우선인듯하다. 자전거도 교통신호를 지키지만 신호가 없는 곳에서는 차와 사람들이 자전거를 피한다. 우리도 자전거 길을 건널 때는 현지 사람들을 따라 좌우를 살펴보고 건넜다.
레스토랑 앞에도 자전거가 넘쳐나고 기차역에도 자전거보관소가 있으며 자전거를 소지하고 타는 기차칸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자전거천국이다. 자전거 행렬을 요리조리 피해 고흐뮤지엄에 도착했다. 지친 다리를 쉬게 할 겸 벤치에 앉았다. 뮤지엄 앞 넓은 잔디광장은 일광욕하는 사람들과 뛰어노는 아이들이 꽤 많다.
벤치 앞, 노숙자 같은 할배가 유모차를 옆에 두고 잔디밭에 누워 꿀잠을 잔다. 유모차에는 에코백과 비닐백이 걸려있고 웅크린 포즈로 누워 자기에 불쌍하다 생각했으나 한참 후 일어나 유모차 안 아기를 살펴본다. 아기는 혼자 우유병을 빨고 있었다.
나이 드니 편한 포즈로 잠을 자도 불쌍해 보이는구나. 젊은이가 웅크리고 꿀잠을 잤다면 그리 불쌍해 보이지 않았을 텐데... 나같이 손주양육을 책임진 불쌍해 보이는 할배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날이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