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著, 인물과 사상사刊
저자 履歷(이력)이 이채롭다. 미생물학을 전공했고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무료신문인 ‘메트로’ 창간멤버로 참여했다. 영화, 와인 등 문화생활 전문기자로 지내는 과정에서 식음료, 향미연구에 심취하며 와인과 위스키 블랜더, 사케 소믈리에, 차 테이스터, 커피 로스터 등 40여 종의 다양한 자격증과 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 언론인 생활을 마감한 후 ‘커피 인문학’이란 강의를 시작했고 커피 테이스터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커피 테이스터, Flavour 마스터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 Marquiz Who’s Who’에 등재되었다.
와인처럼 다양한 향미를 뿜어내는 커피의 매력이 인류를 커피애호가로 꽉 묶어두고 있다. 알코올음료가 와인만이 아닌데 와인마니아를 만들어내는 것과 카페인 음료가 커피만이 아닌데 커피애호가로 하여금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쏟게 하는 것은 향미로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약효로 존재감을 과시하던 커피가 이제는 와인처럼 향미로 즐기는 음식반열에 올랐다. 커피가 문화적으로 격조를 높여가는 과정은 와인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다 기원전 6000년쯤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와인이 제각기 맛으로 평가되어 격에 맞는 대접을 받기까지 거의 8000년이 걸렸다.
와인이 지닌 맛의 가치를 알아본 이는 프랑스 보르도 사람들이다. 1855년 보르도에서는 지역 내 61개 포도밭에서 나는 와인을 5등급으로 분류해 ‘그랑크뤼’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이러한 노력이 보르도와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성공을 거두자 재배지역을 지리적으로 좀 더 명확히 나누기 시작했다.
‘와인의 품질은 포도가 자란 땅의 기후, 재배자의 열정이 결정한다.’는 테루아(Terroir: 와인을 재배하기 위한 제반 자연조건의 총칭)를 존중하는 재배자들의 신념과 철학은 원산지 명칭제도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보르도는 1392년 더 많은 와인의 품질을 평가해 ‘그란크뤼’의 뒤를 잇는 450여 개의 와인에 ‘Cru Bourgeois’로 지정했다. 193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전 지역의 와인을 등급화했다. 품종, 재배법, 알코올 함량 등 양조기준에 따라 관리하고 품질등급을 매긴 덕분에 더 깊은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 와인을 제치고 최고의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와인 마니아들은 이때부터, 프랑스 와인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커피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1974년 미국에서 언급된 ‘Specialty coffee’에서 시작된다. 노르웨이 태생 ‘에르다 크누첸’은 커피공정무역을 전파한 주역이며 Specialty coffee의 개념을 주장하며 커피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좋은 향미를 지닌 Specialty coffee란 특별한 미세 시후를 갖춘 곳에서 자라 최상의 향미를 지닌 커피를 의미한다.’고 했다.
에르다 크누첸은 1978년 파리 커피국제회의에서 Specialty coffee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커피 전문가들이 지지를 보내면서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 유렵스페셜티커피협회를 잇달아 조직하고 cupping(커피 맛을 감별하는 것}을 통해 커피 판별기준을 만들었다. 커피의 외관, 향미, 질감, 깔끔함 등을 평가해 80점 이상점수를 받은 커피를 ‘Specialty coffee’로 규정했다.
한편 스타벅스의 기세가 대단했다. 커피 맛 표준화를 무기로 1974년부터 하루에 1~2개씩 매장을 늘리는 스타벅스가 커피시장을 통째로 삼킬 기세였다. 획일화된 맛을 퍼뜨리는 스타벅스를 바라보던 커피애호가들은 Specialty coffee의 정신을 호소하며 반스타벅스전선을 구축했다. 그들은 스타벅시즘으로 상징되는 커피맛의 몰개성화에 반기를 들고 ‘카운터 컬처 커피’, ‘인텔리젠시아 커피&티’, ‘블루 보틀’, ‘스텀프타운 커피 로스터스’등이 개점하며 Specialty coffee운동에 힘을 실었다.
태우다시피 진하게 볶지 않고 생두가 지닌 고유의 향미를 잘 살려내 음미하는 Specialty coffee 운동의 진정한 가치는 문화적 소비행태로 진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하는 바를 착실히 수행해 한 잔의 향미로 오롯이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되새기자”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