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著, 인물과 사상사刊
구약성서나 종교 관련 서적에 묘사된 선악과를 보면 그 성격이 사과보다 커피 열매와 잘 들어맞는다. 선악과를 먹고 눈이 맑아지고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고 적혀있다. 따라서 선악과나무를 ‘지식의 나무’로 그 열매를 ‘지혜의 열매’로 불리기도 한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커피에 신체를 활성화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동시에 집중력까지 높여주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819년 독일화학자 프리들리프 페르디난트 룽게에 의해서였다. 여기에 카페인의 분자구조가 신경전달물질인 아데노신과 유사해 뇌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은 60여 년이 더 흐른 1881년이다. 역시 독일의 유기화학자인 에밀 헤르만 피셔의 연구 덕분이었다.
인류는 카페인의 존재를 모른 채 수천 년간 즐기면서 기이한 신체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도대체 커피의 무엇이 부당하게 맞서는 용기의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지, 왜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선악과의 기능은 혹시 카페인이 발휘하는 지적계몽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커피나무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집트, 터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로 퍼지면서 ‘지식의 나무’로, 커피체리는 ‘지혜의 열매’로 불렸다. 도 동정 한 닢 정도 만으로 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토론을 마음껏 경청할 수 있던 카페를 ‘페니대학’이라고 부른 것은 단지 우연일까? 어쨌든, 커피를 중심으로 지식인들이 펼친 계몽활동이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에서 카페인의 각성효과는 시대적 계몽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 자주 들어 본 최음제는 필로폰이다. 중추신경에 강력하게 자극하는 각성효과와 성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을 없애주는 최음효과를 발휘한다. 모르핀도 대뇌로 이어지는 진경전달에 관여하면서 최음효과를 낸다 커피의 카페인도 이 무시무시한 마약들과 같이 신경 전달에 개입한다.
커피가 환각과 중독을 유발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은 이른바 ‘불법과 합법의 담벼락을 걷는 기막힌 성질’ 때문이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유사하게 생겨 대뇌가 신체를 잠재우려는 신호를 거꾸로 각성하도록 바꾸는 위험한 작용을 하지만 3~4시간이면 절반가량이 자연스레 배출되며 효과가 사라진다. 게다가 카페인은 중독과 금단현상마저 없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하루섭취량만 준수한다면 되레 심혈관계를 촉진하는 약으로 쓰인다. 따라서 카페인은 합법적인 마약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커피 꽃과 꽃술에도 카페인이 있다. 커피나무는 이를 통해 미량의 카페인으로 꿀벌을 중독시켜 다시 자신을 찾아오게 만든다.
값 비싼 고급커피를 고르라면, 특히 국내에서는 거의 20년째 3종이 손꼽힌다. 커피의 황제라 불리는 Jameica Blue Mountain, 마크 트웨인이 사랑한 Hawaiian Kona Extra Fancy, 커피의 귀부인이라 지칭되는 Yemen Mocha Mattari 등이다.
이중 Jameica Blue Mountain 커피는 오크통모양의 특별한 통에 담겨 판매됨으로써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자아낸다. 커피의 황제라고 부르는 것은 맛과 풍미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마케팅적인 요소가 다분하며 일본인의 교묘하고도 대담한 상술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자메이카 커피 생산은 1932년 최정점을 찍는다. 무분별한 과잉생산은 품질하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여기에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자메이카 커피농장은 줄도산에 처했고 이후 30년간 커피산업은 추락했다. 암울한 상황에서 1964년 자메이카와 수교를 맺은 일본이 자메이카정부에 외화를 지원해 주고 대가로 블루마운틴커피를 전량 인수하다시피 했다.
이미 하와이안 코나 커피의 7~80%를 장악한 일본인들이 품질관리 기법을 그대로 적용해 블루마운틴 주변에서 생산되는 커피에만 블루마운틴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다. 생두 크기와 재배고도에 따라 등급을 부여해 Jameica Blue Mountain No1이란 최고등급의 커피를 만들어냈다. 세계 최고라 찬사 받던 Hawaiian Kona Extra Fancy와 견줄만한 커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은 한걸음 더 나아가 Hawaiian Kona Extra Fancy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전략을 구사했다. Jameica Blue Mountain No1을 전량 선점해 90%를 일본으로 가져가고 10%만 세계에 유통시켰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희소성 덕분에 Hawaiian Kona Extra Fancy보다 비싸게 팔리며 ‘커피의 황제’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생두를 마대자루가 아닌 오크통에 넣어파는 ‘비싸게 보이는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는 무엇일까?’ 사향고양이 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kopi luwak'을 떠올린다. Jameica Blue Mountain과 Hawaiian Kona Extra Fancy도 빠지지 않지만 파나마 Geisha의 등장으로 논란은 잦아들었다. Geisha는 에티오피아 어느 마을 뒷산의 이름인 Gesha에서 유래한 것이다.
Geisha는 파나마를 하루아침에 '커피 품질 제1위의 나라'로 만들었다. 파나마는 풍부한 강수량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풍성한 구름이 커피나무를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준다. 바루화산국립공원은 3474미터로 고지대 화산토양이 커피의 향미를 복합적이고 흥미롭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