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코까지 감안한 세심한 코디임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1567년 3월 13일 ~ 1648년 10월 24일까지 80년간으로 스페인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저지대였던 네덜란드는 자연재해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 지난 100년은 간척과 치수사업을 통해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Zuiderzee Museum/Enkhuizen은 100여 년 전 네덜란드 간척사업 당시의 시대상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한국의 민속촌 같은 곳이라 한다.
민속촌은 배를 타고 들어간다 15분 남짓 바다같이 넓은 물을 건너지만 물색은 민물이다. 민속촌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굴뚝이 있는 공장과 마주한다.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석회석을 굽던 공장이라 하는데 공장 주변에는 조개껍질이 많다. 석회석과 조개껍질은 유사성분이었으니 구하기 쉬운 조개껍질을 구워 시멘트를 구웠던 듯하다.
줄넘기, 요요팽이, 나무공 볼링 등 전통놀이를 할 수 있는 마당을 지나면 로프꼬기를 재현하고 체험하는 코너도 있다. 수염이 덥수룩한 스텝의 설명에 어린아이들이 귀를 기울이며 체험에 열중한다.
뮤지엄 전체는 하나의 마을이다. 풍차와 수로, 목공소, 철공소, 잡화점, 학교, 우체국, 약국, 크고 작은 살림집, 어물전과 정육점, 약국, 교회, 훈제생선 만드는 곳, 조선소와 카페도 있다. 실제로 훈제생선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훈제생선 만드는 사람은 배우가 아닌 진짜 상인 같다. 고등어, 연어, 장어, 청어 등을 훈제하여 실제로 판다. 훈제생선의 고소함보다 비릿한 내음이 진동해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일부 고위층이 살았을 법한 커다란 집도 있지만 살림집 대부분은 매우 좁았다. 작은집은 들어서자마자 부엌이고 옹색한 부엌을 지나면 거실이다. 침실은 벽장 속에 있으나 큰 키의 네덜란드인이 발 뻗고 자기에는 좁은 길이와 면적이다. 공동우물이 있기는 하지만 집마다 빗물을 받는 저장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방이 물이지만 염분기 없는 양질의 연수(軟水)는 구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텃밭에는 채소가 자라고 돼지와 양도 기른다. 빨래도 걸려있으며 생선을 널어놓고 건조하는 등 시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꼼꼼하게 연출해 놓았다. 민속촌내에는 나무로 만든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실제 밥을 지어먹는 할머니도 계시다. 그물을 수선하는 어부도 있으나 당시 모습을 재현하는 배우들이다. 전시된 소품들은 손때 묻은 것들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으며 부엌에 들어서면 당시 연료인 등유냄새가 난다. 눈과 코까지 감안한 세심한 코디임을 알 수 있다.
뮤지엄 내에 연기 나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세탁공장으로 당시를 재현하기 위해 석탄을 떼고 세탁기를 돌린다. 어부들과 간척지 노동자의 옷을 빨았을 것이다. 100년 전에 사용했던 세탁기가 자동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 3만 불, 네덜란드 6만 불의 선진국이지만 20세기 초반 민초들의 삶은 똑같이 고달팠을듯하다. 좁은 집의 옹색한 부엌과 거실, 침실은 최소한의 공간으로 구성된 네덜란드 벽돌집과 우리나라 초가집은 건축양식만 다를 뿐이다. 20세기초 양국의 선대들이 고생한 덕분에 멀리 네덜란드에 와서 당시의 시대상을 구경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놀러 다니며 끼니를 거른 적이 없다. 특히 놀러 다닐 때는 기계적으로 때가 되면 먹어야 한다. 그래야 걸어 다닐 수 있으며 먹고 마시는 것도 관광의 일부이다. 뮤지엄내부에 규모 있는 식당이 있다. 정식을 위주로 파는 곳이 아니라 샌드위치, 햄버거, 감자튀김 등 간편식을 주메뉴로 하고 있다.
감자튀김을 바로바로 튀겨내는데 눈으로 봐도 바삭하고 맛있을 것 같다. 닭고기 샌드위치를 주문하기로 했고 음식 진열대위의 애플파이가 맛있게 보여 추가했다. 네덜란드 전통음식이란 미트볼도 주문했다. 미트볼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끈적한 식감이다. 눈으로는 맛나게 보였으나 입에서는 ‘별로’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감자튀김, 샌드위치, 애플파이 맛은 수준이상이었다. 민속촌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집 근처 프랑스 음식점 'Restaurant Le Brasseur'에 갔다. 수로옆 테이블에 앉아서 보는 낙조가 아름답다. 이곳은 부촌인 듯 주택규모도 크고 보트들이 오가며 음식점 고객들은 동네사람들로 보이며 거의 노년층이다. 벌써 해가진 지 오래되었으나 음식이 나올 생각을 않는다. 혹시 주문이 누락되었을까 봐 주문을 확인하니 준비되었단다. 그러나 삼십 분이 더 소요되어 1시간이 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음식맛은 당연히 좋았으니 주방장전략에 속은듯하다.
리조또, 닭, 돼지고기, 소고기를 주문해 모두 맛을 보았다. 네덜란드에서 닭고기를 주문해서 실패한 경험이 없다. 음식 맛이 좋았지만 구글 평점을 짜게 줬다. 음식맛 3, 서비스 1. 주변풍경 5점으로, ㅎㅎ 소심한 복수 이번 여행에서 구글의 위력을 실감한다. 타임라인으로 내가 구경한 곳에 대한 평가 정보를 얻고 입력하고, 주변 맛집 검색, 메모필요성을 줄이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구글 내비게이션은 정직하게 길을 가르쳐줘서 불법 유턴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했지만 작은 아이는 구글을 이용해 모든 일을 처리한다.
수로를 오가는 배위에서는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휴일을 즐기고 있다. 오늘은 서두르지 않아 여유로운 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