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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an 20. 2024

드디어 신입이 들어왔다!

3년 만이다. 탁구 동호회 초보 그룹에 신입회원이 들어온 것은. 그것도 무려 3명이나.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탁구장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코로나가 끝난 지난 1년 역시 신입은 없었다. 제주에서는 탁구 초보 그룹을 오름부라고 부르는데 숫자로 보면 9부다. 오름부의 위치를 보자면 관장이 1부니 9부는 제일 아래 그룹이다. 오름부는 여성회원들만 있다. 왜냐하면 처음 동호회에 들면 남자는 8부, 여자는 9부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구장 관계자도 아닌데 오름부 신입회원을 손꼽아 기다렸던 이유는 따로 있다. 탁구 대회에서 오름부 단체전 최소 인원은 3명이다. 상위 부수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오름부 숫자가 점점 줄더니 딱 3명이 되었다. 2024년에 3명 중 누군가 상위 부수로 올라간다면 오름부는 단체전에 출전할 수 없다. 단체전 출전을 위해서라도 단 한 명이라도 들어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무려 3명이나 들어왔다. 오름부가 6명이 되니 2팀으로 나눠 출전도 가능하다. 소박한 소망에 비해 결과는 파격적이었다.

 

첫 번째 신입회원은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직장 선배다. 인원 많은 부서에 서로 다른 팀이었기에 그리 친분이 있지는 않았다. 가끔 마주칠 때면 “탁구 친다며?” 하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탁구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라 생각지 못했다. 서로 다른 근무처로 이동했을 때 우연히 사내 메신저를 통해 그녀가 또 물어왔다. “지금도 탁구장 다녀?” 그제야 얼른 말을 건넸다. “네, 다녀요. 혹시 탁구 배우실 생각 있으시면 같이 가요. 제가 같이 갈게요” 바로 그날, 그녀는 탁구 레슨을 등록했고 꾸준히 열 달 넘게 다니고 있다. 작년 12월 말, 새해에는 동호회에 들겠다고 그녀가 말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안아주고 싶었다.

 

두 번째 신입회원은 에너지 넘치고 미소가 예쁜 젊은 회원이다. 가끔 구장에서 마주쳤지만, 나보다도 한참 어려 보여 괜스레 말 걸기가 어색해 인사 정도만 하던 회원이었다. 연습하는 모습이 탁구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늘 부지런한 그녀를 보며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말, 다른 회원이 동호회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내게 제안했다. 동호회 이야기가 부담될까 망설여지긴 했지만, 살짝 운을 뗐다. “혹시 동호회 가입하실 생각 있으세요? 저기 칠판 보시면, 제일 막내 그룹이 오름부에요” 조심스레 오름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물었다. “동호회 어떻게 드는데요?” 진작 물어볼걸. 그녀는 흔쾌히 동호회에 들었다.

 

세 번째 회원은 커플이다. 중년의 신혼 같은 그들은 두 사람이 동시에 코치에게 레슨을 받고 레슨이 끝나면 서로 연습했다. 대학생 자녀도 있다고 했는데 어쩜 그렇게 다정한 연인 같은지 천생연분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인 듯했다. 얼굴이 익숙해질 때쯤 여자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제가 잘 치지는 못하는데요, 그래도 저랑 같이 좀 치실래요?” “아니 괜찮아요.” 머쓱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부가 연습을 같이해야 해서 그렇기도 했고, 잘 치지 못하는데 같이 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랬다는 걸 알았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분에게 동호회에 들어오실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다. “나중에 들게요” 그녀의 간결한 대답이었다. 운동이라는 게 누가 하랬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별 기대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호회 밴드에 새로운 회원이 초대되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을 보니 탁구 커플이었다. 그녀의 깜짝 등장으로 오름부 회원이 3명에서 6명으로 2배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탁구 레슨을 시작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탁구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느낄 때쯤 레슨을 그만두거나,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계속하거나. 나 역시 두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탁구장에 레슨을 등록하고 처음 1년을 다니는 동안 레슨이 끝나면 기계와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과 탁구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낸 시간이다. 집에서 푸념할 때면 신랑이 말했다. “힘들면 그만두는 건 어때? 당신한테 맞는 운동이 아닐 수 있어. 벌써 1년인데 그 정도면 할 만큼 한 거야” 신랑의 그 말이 이상하게도 계속 탁구를 하게 했다. 오기였다.

벌써 4년이다. 나는 여전히 초보 부수 오름부지만 현재의 내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과 다를 거란 걸 안다.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연습하는 나는 훨씬 더 탁월한 내가 되어 있을 거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탁구를 즐기고 있을 거다.


2024년, 내 삶의 궤적에 그녀들이 들어왔다. 또 하나의 인연이 가늘게 연결된 느낌이다. 우리는 연습으로 땀에 흠뻑 젖은 채 거칠게 숨을 내쉬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스윙과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탁구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 똑같아 보인다는 유니폼을 보며 ‘예쁘다, 세련되다’를 논하며 웃을 것이다. 잘되지 않는 동작으로 고민하고 연습하다 낙담하고, 그러다 기쁘고, 감동하고, 경기에서 멋진 플레이에 환호성 하며 서로 삼다수를 건네며 응원하고, ‘잘하고 있어’를 외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영원히 오름부 일순 없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내가 그토록 바라는 8부로 승급 전, 딱 1년이다. 가늘게 연결된 인연이 짧지만 굵게 변모할 시간 1년. 그렇게 나의 청룡의 해는 그녀들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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