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다. 오전에 외출해서 볼일을 보고, 점심에 돌아와 집안 정리를 끝낸 후 여유 있게 책을 읽는다. 책 챕터가 바뀔 때쯤 문득 서브를 연습하고 싶어졌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3분 뒤! 아무도 없는 탁구장에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다. 투명한 문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며 스트레칭을 했다. 넣고자 하는 서브를 정확히 똑같이 넣는 것이 연습의 핵심이다. 할 때마다 달라지는 서브가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연습한다. 1시간쯤 지나 탁구장을 나왔다.
3분 뒤! 나는 우리 집 거실에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은 탁구장 바로 앞이다. 탁구장이 아파트 부대시설인 것처럼 나는 그곳에 쉽게 간다. 어떤 날은 ‘아침에도 탁구장에 들렸다 출근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출근 전 헬스나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챙겨야 할 아이들과 해야 할 일들이 있기에 아직 시도해 보진 않았다.
집 앞에 탁구장이 있어 좋은 점을 이야기하자면 세 가지 정도다. 첫째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다는 거다. 마음이 있다면 거리에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가까우면 마음먹기가 조금 더 쉽다는데 한 표다. 둘째는 탁구장에 갔는데 잊은 물건이 생각날 때 다시 집에 가서 가지고 올 수 있다. ‘아! 깜빡했네’ 하면 얼른 집에 가서 가지고 와도 10분 이내에 해결된다. 다른 회원이 물건을 깜빡 잊고 올 때도 도움이 된다. 한 번은 탁구복을 안 가지고 온 동호회 언니를 위해 유니폼을 가져와 빌려준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시간을 선물 받을 수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회원들이 왕복 한두 시간이 걸린다면 나는 그 시간을 덤으로 받은 기분이다. 나는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 얻은 여유를 탁구장에 붓는다.
탁구장 옆 지금의 아파트에 산 지도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집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낡게 마련이고 이곳저곳 수리할 일이 많아진다. 주변에 새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고, 몇 년 후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굳이 이 동네에 살 이유는 없다.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탁구장을 생각하면 딱 멈춘다. 나는 탁세권에 살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졸업하면 이제 비로소 나의 시간인데 엄청난 ‘탁세권’을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지하철 역세권이 좋다 해도 내게는 탁세권이 더 중요하다. 10년 전에 탁세권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때 탁구를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헤매고 있지는 않았겠지. 체력도 그때는 더 잘 버틸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시간은 흘렀지만 난 여전히 같은 곳에 살고 있다. 멀리서 오는 회원들이 부러워하는 거리에 말이다. 선물 받은 시간으로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더 재미있게 탁구를 하면 2024년 청룡 해에 여의주 하나쯤은 가슴에 품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초보 탈출을 위해 탁세권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보리라.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탁구장이 오늘따라 더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