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6일 제주도탁구협회장기 대회가 열렸다. 탁구 초보 그룹, 오름부인 우리가 올해 초부터 승급을 위해 준비했던 대회다. 초보 부수인 9부에서 8부로 승급하기 위해선 4점이 필요하다. 대회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하거나, 8강 이상에 올라가서 점수를 모으면 된다. 8강이 1점이니 이런 점수만 4번 모으면 승급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하지만 8부로 승급했다고 해서 나의 탁구 행보가 꽃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운 좋게 점수만 모아서 올라간다면 8부에서도 헤매고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이 기다려진다고 하던데, 나는 아니었다. 탁구를 잘 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탁구는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대회에서는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그 승급의 관문, 8강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실력이 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예선은 리그전으로 진행되는데 4명 중 2명이 본선으로 올라간다. 본선에 올라가면 토너먼트다. 예선전에서 두 명을 3대 0으로 가볍게 이겼다. 나머지 한 명에게는 3대 1로 졌다. 조 2위로 본선 32강에 이름을 올렸다.
난, 지금까지 대회와 달라져 있었다. 공 칠 때 멍함을 물리치고 단단하게 서 있었다. 날아오는 공에 당황하지 않았고 서브를 받을 때도 내가 공을 넘길 때도, 실수할 때조차 어른처럼 경기하고 있었다. 긴장의 표정은 감출 수 없었지만, 동작 하나하나 신중히 나름의 플레이를 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보였다. 구장 회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해.” 본선 첫 토너먼트에서 3대 0으로 이겼다.
잠시 후 두 번째 토너먼트가 시작됬다. 이상하게도 이전 게임과 발놀림과 스윙이 달랐다. 깔끔하게 3대 0으로 졌다. 가보고 싶던 8강의 문턱에서 경기가 끝이 났다. 서브하고 리시브도 하고 공을 치기는 했는데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은 이미 뿌연 것이 ‘멍’ 해진 상태였다. 너무나 명백한 결과에도 여운이 남았다. 응원하던 구장 동생이 말했다. “언니! 아까 경기는 언니 예전 모습 같아. 완전 다른 사람이야, 공도 급하게 넘기고, 박자가 안 맞았는지 공을 막 치던데요.”
기말고사 마지막 과목을 어이없게 치른 느낌이다. 까다로운 예선 경기도 1세트는 가지고 왔었는데, 앞선 경기보다 빠르지도 세지도 않은 공에 공격도, 수비도 못 하고 점수만 내주다 경기가 끝나버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받을 수 있는 공들을 하나도 못 받고, 다시 멍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그게 나의 현실 점수였다.
2023년, 다른 해보다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더 많은 정성을 들인 탁구다. 주머니 속 손난로를 가슴에 대 보지만, 현실 실력을 마주 본마음은 춥고 허전하다. 하지만 어디 기말고사 한 번 못 봤다고 인생이 달라지는가. 나이가 들어 좋은 건 그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나고 나면 별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온종일 걱정에 싸여 밤잠을 설칠 만큼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탁구는 멍함과 단단함의 어느 중간의 지점에 도착했다. 상대 서브를 못 받고 공을 날려버리면 나에게 다음은 없었다. 어쩌다 상대 서브를 받았다 해도 그게 끝이었다. 내가 친 공이 상대 탁구대에 들어가면 다행이고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 멍함의 이정표를 지났다는데 감사한다. 조금 천천히 오긴 했지만 멈추지 않았음에 나를 다독인다. 어떤 공이 와도 당황하지 않을 마음의 단단함과 박자의 여유를 가진 나를 그려본다. 손에 쥔 민트 차가 따뜻하고 알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