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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Feb 29. 2024

나의 참새방앗간

요즘 좀 바쁘다. 출근도 평소보다 일찍 하고 퇴근도 늦다. 주말에도 출근하고, 가끔 집에 있는 날에도 업무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일이 몰아치는 시즌이기에 몸은 지치고 잠도 부족해진다. 문제는 이렇게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탁구장에 가서 땀 흘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는 거다.  

    

탁구장 친한 회원들과의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나 너무 바빠. 계속 야근이야. 오늘 너무 지쳐, 퇴근하고 늦게라도 탁구장 가고 싶은데, 갈 사람 있나요?”

나도 모르게 글을 남기고 피식 웃었다. 지치면 집에서 쉬어야지 탁구장은 왜 가려하는가. 탁구장이 뭐길래! 사람들과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승리의 짜릿함 때문이냐? 그건 아니다.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 서브 연습을 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회원들과 기본 동작을 반복해서 주고받는 게 전부다. 그게 뭐 그리 재미있을까. 점수를 주고받으며 탁구장 저 끄트머리에 어쩌다 공이 들어가는 짜릿함이 있는 게임에 비하면 심심하기 그지없는 단순 연습인데 말이다.     


똑딱똑딱, 공이 라켓과 만나는 소리가 좋다.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탁구공 소리를 들으면 즐거워진다. 공 소리에 리듬을 맞추며 움직이는 기계적인 동작에서도 통쾌함이 느껴진다. 그러다 땀이 흐르면 개운함은 덤이다. 땀이 날수록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이리 좋은 탁구장을 제대로 못 가니 나도 모르게 몸이 답답하고 찌뿌둥해진다. 머릿속이 무언가로 꽉 차 막혀버린 것처럼 탁하고 흐릿한 것이 하루가 같은 날의 반복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꼭 가봐야지’ 하지만 기한이 정해진 업무들이라 또 퇴근이 늦어진다.     


이런 날이면 참새방앗간처럼 나는 탁구장을 기웃거린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아파트 주차장에 자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밖에 차를 세워야 하는데 집 근처에 있는 탁구장 주위를 빙빙 돌다 주차를 한다. 그리고는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에 꼭 탁구장 앞을 지난다. 반지하에 반쯤 썬팅된 창문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치고 있는지 쓱 훑는다. 탁구공 보느라 바쁜 회원들이 나를 봤을 리 없다. 몰래 위에서 내려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이내 함성과 함께 탁구대를 횡보하는 그들이 부러워진다.

      

나는 늘 코치와 함께다. ‘스윙을 앞으로 뻗어야지, 왜 가슴으로 접는 거야’, ‘다리를 누르면서 치라니까 왜 자꾸 토끼처럼 뛰는 거야,’ ‘왜, 공치고 멍하니 서 있니! 쳤으면 바로 자세 낮추면서 돌아와야지’ 내 안의 코치가 동작이 끝날 때마다 속사포로 말을 해댄다. ‘알겠다고요, 안다고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그렇게 한 거라고요. 이것이 내가 반복해서 연습해야만 하는 이유다. 아마도 창문 너머 그들이 부러운 건 넘치는 에너지 속 매일의 꾸준함이리라.     


오늘도 퇴근이 늦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탁구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탁구장 창문 너머로 조용히 구장 안을 들여다봤다. 6개의 탁구대가 빈 곳 없이 꽉 차 있다. 4명이 복식을 하는 테이블도 있다. 익숙한 회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살며시 발길을 돌리는데 문을 열고 회원이 나온다. “안 들어가세요?” 머뭇거리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은 아니에요. 지금 퇴근했어요.” 복잡한 머리를 맑게 하고, 거칠어진 기분을 매끄럽게 하려면 내일은 꼭 구장에 야겠다. 비록 사람들과 함께 뛰지는 못하지만, 참새방앗간처럼 들를 수 있는 탁구장이 있어 그마저도 행복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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