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대회에 가족 모임까지 알차게 주말을 보내고 늦은 저녁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평소와 사뭇 다르다. 살짝 얼굴에 열이 오르는 듯 발그레 한 것이 간지럽기도 하다. 잠시 열이 난 것이려니. 내일 오전부터 외부위원들이 참석하는 기간제 교원 채용 심사가 있다. 서둘러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잠에서 깼다. 얼굴이 무언가에 덮여있는 것 같다. 어둠 속에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니 호밀빵 표면처럼 딱딱하고 밀도 있는 무언가가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서운 마음에 조심히 일어나 거울을 봤다. 헉! 세상에. 이게 무슨 일! 거울 속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다. 눈꺼풀은 부풀어 눈을 덮어버렸고, 광대뼈는 나에게도 있었는지 어떤 윤곽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 전체가 하나의 벌건 풍선처럼 금세 빵 터질 것같이 부풀었다. “이게 나야?” 낯설고 무서운 얼굴이 내 자리를 차지했고, 나와 함께한 정다운 내 얼굴은 사라지고 없었다. 급한 대로 출근 준비를 했다. 가려움은 버티면 되고 흉측해 보이는 얼굴은 마스크로 최대한 가리면 될 터였다.
그런데, 마스크로 가려질 얼굴은 아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어떻게요. 병원에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직원들의 걱정이 쏟아졌다. 살에 접혀 선만 보이는 눈은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었다. 내 작은 눈이 결코 작은 건 아니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노란 웜톤인 얼굴은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어 더 칙칙하게 보였다. 심사위원 대기실에 위원들이 속속 들어오고 응시자들도 하나둘 등록을 시작했다. 호빵 같은 얼굴에 화장을 못 한 민낯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불편했지만, 심사위원들에게 오늘의 심사에 관해 설명하고 교육을 마쳤다. 이제 순서대로 면접을 진행하는 일만 남았다. 흉측한 모습에 가려움까지, 더는 늦출 수 없었다. 남은 일은 동료들에게 맡겨두고 피부과로 달려갔다.
월요일 아침, 병원에는 이미 사람이 많았다. 대기만 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래도 병원에 온 것에 감사했다. 진료만 받으면 다 나으리라. “어디가 아프세요?” “어젯밤부터 붓기 시작하더니 지금 이렇게 됐어요.” 마스크를 벗었다. 의사는 돋보기 같은 것으로 얼굴 가까이에 데고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알레르기 같기도 한데, 여러 원인일 수 있어요. 접촉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음식에 의한 것일 수도 있어요. 일단 주사 맞고 약을 먹으면서 다시 보기로 하지요.” 꽤 아픈 엉덩이 주사를 맞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가려움은 가라앉았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저주받은 할머니 소피가 원래의 소피로 돌아오는 마법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화요일 아침. 업무 관련 출장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꺼려졌다. 함께 가는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병원으로 갔다. 또다시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았다.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웠다. 부기가 빠진다고 해도 딱딱해진 피부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지 걱정이 됐다. 휴가를 낼 수만 있다면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연예인도 아닌데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된다고. 누가 나를 본다고’.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탁구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도무지 뭘 잘못 먹었는지.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기억을 돌려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알 수 없었다. 예쁜 구석 없어 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던 때도 있었을 텐데 그 모습마저 아쉬워하고 있었다. 참새방앗간 탁구장도 못 가면서 말이다. 자신없는 외모와 딱딱해진 피부가 돌아올까 하는 마음이 뒤섞였다.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돌아와라, 돌아와라' 주문을 외우며 얼굴에 보습 크림을 발랐다. 거울 속에는 걱정에 가득 찬 불만투성인 내가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