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선택 앞에 멈추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하여
예루살렘의 밤은 늘 조용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더 고요했다.
마치 모든 바람이 움직이기를 멈춘 듯, 골목을 스치는 공기조차 얇아졌다.
흙먼지 위로 낮 동안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각 집의 작은 등불은
누군가의 숨결처럼 들고났고, 골목 끝 감람나무 가지는 바람의 결을 잃은 채
그저 묵묵히 흔들의 고요를 품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는 또 다른 하루가, 어쩌면 ‘세상의 하루’가
조용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 다락방 안에는 주님의 마지막 저녁 식사가 놓여 있었고,
열두 명의 제자들이 축축한 긴장감을 조용히 뿜어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유난히 따뜻한 빵 냄새와, 아직 식지 않은 포도주의 향이
사람들의 불안한 숨결에 섞여 묵직하게 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불안했고, 마음속에는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은
예감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소란을 알고 계시면서도
아주 조용한 손길로 떡을 들어 축복하셨다.
그 순간, 방 안의 모든 움직임이 멈춘 듯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그 말은 귀를 찢을 만큼 큰 소리도 아니었고,
벽을 울릴 만큼 강한 선언도 아니었다.
오히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낮았고,
기도하던 이의 한숨보다도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한 말이 방 안을 채우는 데에는
단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마다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작은 그림자들이
순간적으로 실체를 드러내는 듯했다.
‘혹시… 나인가?’
그 불편한 질문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모두의 마음을 동시에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에서 가장 크게 흔들린 사람은
아무도 아닌, 바로 가롯 유다였다.
주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유다의 손끝이 아주 작게 떨렸다.
그 떨림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것을 보았고,
주님은 그 미세한 움직임 속에 숨어 있는
유다의 마음을 아셨다.
그 순간은 유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였다.
돌아서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마지막 문이었다.
주님이 열어두신 마지막 창문이었다.
주님은 유다에게도 떡을 건네셨다.
그 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약속이었으며,
유다에게는 회개할 기회였다.
하지만 유다는 그 떡을 손에 쥔 채
눈을 들지 않았다.
주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워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회개의 문은 바로 앞에 있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용기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다는 떡을 손에 쥔 채
자신의 어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문 하나를 지나치는 데에는
단 두 걸음이면 충분했지만,
그 두 걸음이 유다가 세상에서
가장 멀리 걸어간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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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언제나 가장 조용한 얼굴로 온다
우리는 종종 기회를 ‘특별한 순간’에서 찾으려 한다.
삶을 뒤집는 사건 속에서,
누군가의 강렬한 충고 속에서,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방향 속에서.
그러나 인생을 오래 살아보면 알게 된다.
진짜 기회는
소리 없는 속삭임으로 온다는 것을.
기회는
수줍은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문득 가슴을 콕 찌르는 작은 불편함,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며 생기는 미묘한 미안함,
한순간 움찔하는 양심의 떨림,
오늘은 용서를 해야겠다는 이상한 예감,
누군가의 말이 마음 한구석 오래 남아 떠나지 않는 그 감각.
이 모든 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는 기회다.
돌아설 기회,
멈추어 설 기회,
사랑할 기회,
용서할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
그러나 우리는 기회를 알아보는 법을
참 쉽게 잃어버린다.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에 닿아도 듣지 못한다.
기회는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기회는 그저 조용히 우리 앞에 놓일 뿐이다.
유다가 받았던 떡 한 조각처럼 말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시대를 건너는 하나의 초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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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기회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선택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열리는 새 문이고,
그 문을 열지 않으면 지나가 버린다.
기회란 ‘오늘’에 있다.
기회는 ‘언젠가’라는 말 속에서는
금세 말라버린다.
‘내일’이라는 단어에 담아두면
금방 사라져버린다.
오늘 누군가에게 건넬 말이 있다면
오늘 말해야 한다.
오늘 내가 고쳐야 할 마음이 있다면
오늘 시작해야 한다.
오늘 주님이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면
오늘 응답해야 한다.
삶은 우리에게 매일
다락방의 한 장면을 펼쳐 보인다.
우리는 그 장면 앞에서
주님이 건네시는 떡 한 조각을 받는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너는 지금 어떤 마음을 선택하겠느냐.”
“너는 오늘도 나를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느냐.”
살아 있는 동안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기회를 의미한다.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늘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너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돌아올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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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락방의 장면으로
입술을 열지 못한 유다를 바라보는 주님의 눈빛은
고요한 연못처럼 깊고 따뜻했다.
그분의 시선에는 비난이 없었다.
판결도 없었다.
그 시선은 마지막까지 ‘기다림’이었다.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온순한 기다림이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느 만큼 아픈지,
어느 만큼 흔들리는지,
어느 만큼 두려운지 아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억지로 문을 열라고 하지 않으시고,
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신다.
유다가 문을 지나쳐 버린 그 순간에도
주님은 그를 미워하지 않으셨다.
문을 닫은 것은 유다였지,
주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000년 전의 유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 다락방의 떡 한 조각은
여전히 조용히 건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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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너무 많은 순간들을 놓친다.
누군가에게 말해주어야 했던 따뜻한 말,
내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던 회개의 순간,
용서로 맺어진 눈물 한 방울,
고백했더라면 관계가 달라졌을 순간들.
살면서 우리는
기회를 놓친 뒤에야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깨닫는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
마음이 흔들릴 때,
양심이 속삭일 때,
어딘가에서 작은 미안함이 떠오를 때,
누군가의 얼굴이 오래 머물러 떠나지 않을 때—
그 순간 바로 그 자리가
하늘이 준비한 기회의 문이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떡 한 조각을 건네신다.
그 떡 위에 적혀 있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다.
“지금 돌아오라.”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그저 그 떡 한 조각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것이 회복의 시작이고
삶의 전환점이며
영혼의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 된다.
기회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조금 늦게 알아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 떡 한 조각을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의 눈길이
우리에게 조용히 머물 때
우리는 떳떳하게,
기쁘게,
감사한 마음으로
그 시선을 마주할 수 있기를.
그것이
살아 있는 동안 기회를 선물처럼 사용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