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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Jun 24. 2024

얼굴만 익숙하고, 배경은 낯설었다.

   15년 전 연락이 끊긴 친구가 생각난다.

   돌아보면 아마도 나의 속 깊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눴던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그 녀석이 요 며칠 생각난다.

   그런데 정말 그 친구가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또 옛 생각에 빠져들어 그냥 생각의 '소재'가 된 건지는 지금 분간이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그냥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 편안한 기분. 예전 생각하면 마음이 좋은 기분. 과거를 본능적으로 미화하는 그런 기분. 그래서 그 모르겠는 마음을 글로 써보려 하고 있다.


   연락이 끊긴 걸까? 끊은 걸까?


   나에게는 결혼 이듬해 무척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말 못 할, 아니 말하자면 할 수도 있었던 그런 사정이었지만, 말하면 왠지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아서 차마 입을 못 열겠던 시기였다. 


   내 마음이 좁아져서였을까?

   그때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연락이라는 게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 날 모두에게 먼저 연락하기를 멈춰보았다. 그랬더니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에게서도 연락이라는 게 일 년 가까이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그때 다 살기 바빠서 그랬나 보지', 또 '내가 연락하고 싶음 하지 뭐'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땐 참 많이도 야속했다. 어느 날 '내가 나서야만 유지되는 이런 관계 따위 무슨 소용이야. 다 필요 없어'라는 생각에 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전부 차단하고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 친구의 번호만큼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엊그제 번호를 다시 저장해 보고 카톡 프로필을 봤는데 자기 닮은 아들, 와이프 닮은 딸 낳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의 와이프는 같은 과 후배라 역시 친했다.)


   사진 속에서 얼굴만 익숙하고 배경은 낯설었다.

   그동안 연락하고 지냈다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어디서 주로 자전거를 타는지, 캠핑은 어디로 다니는지, 그 차 승차감 별로라던데 넌 어떤지, 하던 일은 여전히 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몇 살 터울인지, 아들은 야구 선수로 키울 것인지, 울릉도 독도에는 나도 다녀왔는데 넌 어떻게 느꼈는지, 그리고 요즘 사는 게 어떤지.


   그는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바로 옆 도시에 살고 있다. 연락하면 어쩌면 바로 만날 수도 있다.


   아니다. 이 녀석은 나를 만나는 걸 탐탁지 않을 수 있다. 나 혼자의 대단한 착각일 수 있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상대가 당연히 OK 하는 건 아니다. 이 녀석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나를 갑자기 잠수 타버린 이상한 녀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였지만, 15년이나 지났고, 서로의 교집합은 이제는 많이 작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정작 만나서 할 이야기가 없음을 느낄 때 어찌해야 할까? 그 낯섦. 안 해도 되었을(?) 연락을 하고 그 자리에 나간 것을 후회하면 어찌할까? 겁도 난다.


   "뭐 하냐. 지랄 말고, 나와라.ㅋㅋ"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헛헛함을 느낀다. 그래, 성인이라면 저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저런 류의 즉흥적인 연락은 대개 환영받지 못한다.(사업관련하는 사람들만 만나서 그런가?) 현재의 내 주변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나부터도 싫으니까.


   그래서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과는 어딘가 이리저리 재게 된다. '이번 주에 언제 시간 되느냐'도 별로다. 최소 '다음 언제가 좋냐?' 그것도 '나는 다음 주에는 월목금 시간되는데 언제가 좋냐?' 이렇게 묻는다. 이래야 뭔가 내가 아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에 대한 갈증은 아닐까?

   이런 계산 없이 그냥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이 친구가 정말 보고 싶은 건지 나에 대한 의심도 든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감상에 빠졌거나 또는 갈증 때문에 그를 소재로 활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쓰면서 생각했다.

   내 마음이 무엇일까? 이 녀석은 차단된 이후로 나에게 전화나 연락은 했었을까? 나는 어떻게 할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니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게 맞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언젠가 너를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지내. 00(와이프)도 잘 지내지? 어쩜 애들이 엄빠 거푸집이니? 신기하다. 너희들 보고 싶긴 하다. 물론 그게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건지, 그 시절로 돌아간 나를 보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내가 좀 넓게 생각하지 못한 건 아쉽고 한편으로는 미안해, 그때 나 너무 힘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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