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연락이 끊긴 친구가 생각난다.
돌아보면 아마도 나의 속 깊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눴던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그 녀석이 요 며칠 생각난다.
그런데 정말 그 친구가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또 옛 생각에 빠져들어 그냥 생각의 '소재'가 된 건지는 지금 분간이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그냥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 편안한 기분. 예전 생각하면 마음이 좋은 기분. 과거를 본능적으로 미화하는 그런 기분. 그래서 그 잘 모르겠는 내 마음을 글로 써보려 하고 있다.
연락이 끊긴 걸까? 끊은 걸까?
나에게는 결혼 이듬해 무척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말 못 할, 아니 말하자면 할 수도 있었던 그런 사정이었지만, 말하면 왠지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아서 차마 입을 못 열겠던 시기였다.
내 마음이 좁아져서였을까?
그때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연락이라는 게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 날 모두에게 먼저 연락하기를 멈춰보았다. 그랬더니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에게서도 연락이라는 게 일 년 가까이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그때 다 살기 바빠서 그랬나 보지', 또 '내가 연락하고 싶음 하지 뭐'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땐 참 많이도 야속했다. 어느 날 '내가 나서야만 유지되는 이런 관계 따위 무슨 소용이야. 다 필요 없어'라는 생각에 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전부 차단하고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 친구의 번호만큼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엊그제 번호를 다시 저장해 보고 카톡 프로필을 봤는데 자기 닮은 아들, 와이프 닮은 딸 낳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의 와이프는 같은 과 후배라 역시 친했다.)
사진 속에서 얼굴만 익숙하고 배경은 낯설었다.
그동안 연락하고 지냈다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어디서 주로 자전거를 타는지, 캠핑은 어디로 다니는지, 그 차 승차감 별로라던데 넌 어떤지, 하던 일은 여전히 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몇 살 터울인지, 아들은 야구 선수로 키울 것인지, 울릉도 독도에는 나도 다녀왔는데 넌 어떻게 느꼈는지, 그리고 요즘 사는 게 어떤지.
그는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바로 옆 도시에 살고 있다. 연락하면 어쩌면 바로 만날 수도 있다.
아니다. 이 녀석은 나를 만나는 걸 탐탁지 않을 수 있다. 나 혼자의 대단한 착각일 수 있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상대가 당연히 OK 하는 건 아니다. 이 녀석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나를 갑자기 잠수 타버린 이상한 녀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였지만, 15년이나 지났고, 서로의 교집합은 이제는 많이 작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정작 만나서 할 이야기가 없음을 느낄 때 어찌해야 할까? 그 낯섦. 안 해도 되었을(?) 연락을 하고 그 자리에 나간 것을 후회하면 어찌할까? 겁도 난다.
"뭐 하냐. 지랄 말고, 나와라.ㅋㅋ"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헛헛함을 느낀다. 그래, 성인이라면 저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저런 류의 즉흥적인 연락은 대개 환영받지 못한다.(사업관련하는 사람들만 만나서 그런가?) 현재의 내 주변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나부터도 싫으니까.
그래서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과는 어딘가 이리저리 재게 된다. '이번 주에 언제 시간 되느냐'도 별로다. 최소 '다음 주 언제가 좋냐?' 그것도 '나는 다음 주에는 월목금 시간되는데 언제가 좋냐?' 이렇게 묻는다. 이래야 뭔가 내가 아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에 대한 갈증은 아닐까?
이런 계산 없이 그냥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이 친구가 정말 보고 싶은 건지 나에 대한 의심도 든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감상에 빠졌거나 또는 갈증 때문에 그를 소재로 활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쓰면서 생각했다.
내 마음이 무엇일까? 이 녀석은 차단된 이후로 나에게 전화나 연락은 했었을까? 나는 어떻게 할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니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게 맞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언젠가 너를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지내. 00(와이프)도 잘 지내지? 어쩜 애들이 엄빠 거푸집이니? 신기하다. 너희들 보고 싶긴 하다. 물론 그게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건지, 그 시절로 돌아간 나를 보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내가 좀 넓게 생각하지 못한 건 아쉽고 한편으로는 미안해, 그때 나 너무 힘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