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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Dec 03. 2024

제네시스에서 캐스퍼ev로 업그레이드

캐스퍼 일렉트릭

   2016년식

   3,800cc

   5.2미터

   4륜 구동

   8,000만 원

   13만 킬로 주행

   평균연비 8~9km/L


   나의 드림카였던 제네시스는 지난달 나에게 공양미 1,670만 원을 쥐어주고 떠났다. 간단한 서류 작업과 입금확인을 마치고 나는 업자에게 키를 내주었다. 업자는 오후에 다시 가지러 온다는 말과 함께 거래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오래 사용한 물건과는 작별 인사를 한다.

   그래서 점심 식사 후 차외 인사하러 주차장에 갔다. 주차장 안쪽에 주차된 차가 내차인 줄 알고 다가갔는데 다른 차였다.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아쉬움을 삼키며 속으로 인사를 나눴다. 오랜 기간 아무 탈없이 나의 출퇴근과 우리 가족의 여행을 도와준 고마운 차였기 때문에 섭섭함이 느껴졌다.


   나의 드림카였다.

   으레 포람페(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라고 불리는 정도가 되어야 드림카라고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인 80년대에 외삼촌의 번쩍이던 검은색 각 그랜저의 강렬했던 기억은 나에게 다른 차는 생각나지 않게 했다.


https://brunch.co.kr/@jaemist/420


   하지만 이제 경기가 어렵다.

   회사 매출이 반토막이 난지 오래고, 여전히 활력이 붙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나의 20년 사업의 촉은 내년이 더 어둡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다소 비싼 유지비용을 여전히 쓸 수는 있지만, 더 긴축해야 할 수 도 있는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오래 즐긴 로망은 이제는 내려놓기로 한다.


   돈도 돈이지만 금전적으로 조금이라도 자유롭지 못하거나 짊어진 게 많으면 자꾸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사업에서 단기적 안목은 서서히 망해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예전에도 사업이 잠시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차를 팔고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다. 뿐만 아니라 잔잔한 지출과 낭비들을 그물망에서 멸치 털어내듯 거침없이 털어버리고 깃털같이 가볍게 살았던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겪어 낼 수 있었다.


   최대한 미니멀한 삶에서 마지막 남은 맥시멀리즘이라면 이 대형 세단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출퇴근 환경은 또 아니기에 유지비가 적은 차로 바꿨다.


   캐스퍼 일렉트릭이다.

   가장 큰 국산 대형세단에서 경차의 기준을 간신히 벗어난 소형차.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차량 교체다. ㅋㅋ

   기름 대신 전기를 충전하면서 운행비용이 1/5로 줄었다. 전기차라 내연기관에서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엔진오일 같은 유지보수 비용도 없다. 기껏해야 타이어나 브레이크 라이닝 그리고 워셔액 정도라고 한다.


이제는 미용실에 이어 주유소도 안 간다.

   그리고 제네시스를 팔고 이차를 사는데 더 들어간 추가 비용은 약 2년이면 갭이 메워질 거란 계산이 섰다. 마침 추경이 편성되어 보조금을 받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앞으로 (정말 최대로) 5년이면 내가 몸담은 업도 끝이 보이는 듯하다. 만약 다른 경제활동을 하게 되더라도, 전보다는 얇은 지갑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예전의 그 화려함 따위는 이제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큰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졌다. 어른들이 으레 나이가 들면 차를 줄이는데, 나도 그런 대열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건가? 


   사실 운전하는 게 싫어진 지는 좀 되긴 했다. 

   가고 싶지만 가기 싫달까? 출퇴근 동선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차를 바꾸고 더 자주 돌아다닌다.

   나도 모르게 큰 차를 운행하는 것에 저항감이 꽤 있었던 것 같다. 늘 좁은 길과 주차가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이제는 활동 반경이 더 넓어진 것 같아서 생활이 더 즐거워졌다. 여기저기 자잘하게 잘 돌아다닌다. 은퇴하고 적은 생활규모로도 차량 유지에 부담이 없을 것 같아 미리부터 안심이 된다.


   차는 다운그레이드되었지만, 삶의 질은 업그레이드되었다.


   어깨가 가볍다.

   만족한다. 


https://brunch.co.kr/@jaemist/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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