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닝레인 Apr 28. 2022

울던 사연

연분홍 가디건의 여자가 테라스에 앉아 울고 있었다. 건너편엔 무채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앉아 듣고 있었다. 종종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아빠 등의 단어가 들렸다. 내가 비교적 양이 많은 샌드위치를 주문하여 거의 다 먹을 때까지 여자는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책 속 주인공은 제주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남는 시간에 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쉬어가며 일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린 여인의 이야기였다.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엄지손가락이 망가져 본의 아니게 쉬어야 했을 때 여자는 본인에게 왼손으로 그림일기를 쓰는 시간과 바닷가를 걷는 한 달을 선물했다. 매일 적어간 글을 따라 제주를 반이나 돌아 광치기 해변에 도착했을 때 고개를 들어보니 여전히 연분홍의 여인은 눈물 흘리고 있었다. 울면서도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주 앉은 남자는 언제나 입을 열까. 바라보다 상상한다. 둘은 무슨 사연일까. 이제는 여자는 동생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시선이 방해가 될까 다시 책을 본다. 걷기는 계속된다. 책 속 여인은 계속 걸어 산 중턱 마을에 도착했다. 녹차로 젤라또를 만들어 알려진 동네. 서로가 덕분이라 말하는 가운데 주인공은 '훌륭한 사람들은 공을 남에게 돌린다'고 적었다. 상대가 가진 부족에 밝고 내가 했던 작은 일을 크게 봤던 시간이 떠올랐다. 부끄러워 고개를 든다. 울던 여자도 듣던 남자도 사라졌다. 가벼운 커튼이 바람이 흔들린다. 1시간 전보다 공기가 습해졌다. 비가 오려는 걸까. 떠나고 난 자리에서 생각한다. 누군가를 앞에 앉혀두고 울던 날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던가. 


새로 쓰는 책의 제목을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 남는다'라고 쓰고 싶다. 짐 자무쉬는 왜 사랑하는 두 사람을 멀리 두었을까. 별들이 움직일 때는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데 인간은 태중에서부터 익숙해져 듣지 못한다지. 아담과 이브는 검은 하늘 너머에 다이아몬드 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영롱한 소리가 나는 것도 알았다. 별들이 움직이기를 멈추면 어떨까. 파멸이겠다. 그제야 소리가 사라졌음을 알게 될까. 익숙하여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랑 하나가 움직이기를 멈추었을 때 내 은하계 하나가 사라졌다. 부서진 별의 조각들이 심장으로 날아와 박힐 때 나는 사랑이 부르던 아름다운 노래가 사라졌음을 알았던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가.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말했던 기억은 있다. 돌아오게 해달라고 했던가. 제발 끝이게 해달라 했던가. 둘다였던 기억이다. 그때의 나는 슬퍼서 울지 않았고 알지 못해 울었다. 마음이 가려는 방향을 모르던 떄가 있었다. 핑크색의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원망이 시작되던 순간과 울어봐야 달라지는 건 고작 반나절 정도 기분일텐데. 울어도 괜찮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는 울지 않게 될까. 그래도 한참을 울겠다. 어디로 가야 괜찮아질 지 알지 못해서, 내 마음조차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러다 그쳐버린 자리에 나는 있다. 대신 비가 내리려나보다. 우산 없이 나왔으나 걱정되지 않는다. 젖으면 또 마르겠고 그보다는 언제든 뛰어들 작은 차가 내게는 있다. 울지 않는 자가 되었으니 그리움도 끝이면 좋겠으나 비 오는 날 차 안에 혼자 있으면 어김없이 당신이 생각난다. 혼자 있을 때만 울다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않다가 당신을 완전히 잊으면 빈 자리에 평화가 고일까, 검은 홀이 생길까.






작가의 이전글 #3. 경계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