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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프레시 Feb 14. 2022

팀프레시 합류가, 꿈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기회가 되길

written by. 물류본부본부장 김덕영

나의 첫 번째 꿈은 물류 센터장이었다.
19살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자재 입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번 늦게 오는 배송차량이 답답했고, “전국에 식자재를 정시에 납품하는 물류센터를 구축하자”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급하게 대학을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전국에 주 7일 주간 식자재 납품을 정시에 하는 물류 구축은 극악의 난이도인 걸 깨닫게 되었다.)

그때 당시는 유통과 물류의 차이도 몰라서 물류학과가 아니라 유통학과에 지원했는데, 24살 때 한국청년물류포럼과 인천항만공사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그 두 개가 각각 고객의 Front와 End를 책임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인천항만공사 기자단의 첫 글은 유통과 물류의 차이와, 유통의 경쟁력이 점차 물류가 될 것이라는 첫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https://incheonport.tistory.com/2987)



팀프레시 이천 마장 물류센터 외관


그때쯤 내 꿈은 대기업 물류사 취업으로 바뀌었다.

큰 물류 회사에 가야, 큰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 중이던 25살 4학년 때 팀프레시로부터 두 번의 합류 제안이 왔고 첫 번째는 거절, 두 번째는“중고 신입이 대기업 취업에 더 경쟁력 있겠다.”라는 판단을 하고 18년도 11월 겨울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의 팀은 전략기획팀. 서비스 기획, 시스템 기획, 영업, IR, 인프라 셋업 등 회사 전반의 운영/경영을 책임지는 부서였고, 그중에서도 나는 영업과 서비스 기획을 주로 담당했다. 회사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조직은 커져갔고, 19년도 7월 영업과 서비스 기획을 전담하는 조직인 영업기획팀을 신설.

나는 처음으로 미숙한 팀장이 되었다. 이후 팀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내가 직접 업무를 리딩 하면서 짧은 시간 내 정말 많은 성공과 실패, 그로 인한 성장통을 경험했다.

2년간 고객사와 치열하게 설계하고 구축했던 신사업 물류센터가 기획했던 그대로 온보딩 되는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고, 반대로 함께했던 협력사에서 구매부터 배송까지의 SCM 전반을 고려하지 못한 물류 프로세스 설계로 인해, 프랜차이즈 업계 2위 회사 하나가 없어질 수도 있는 위기와 좌절을 겪기도 하였다.

그 당시 팀프레시는 서울, 경기, 강원도의 야간 점포 납품을 수행하는 배송영역을 담당했는데, 풀필먼트와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하루 300대의 용차를 100% 수작업으로 배차하며 상품을 내보내고 피박스를 수거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 달 동안 하루 36시간 근무 후 8시간 자는 것을 반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조직의 위대함과 동료에 대한 감사였다. 현장통제와 DB가공, 차량수급과 비용집행 등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리소스가 필요했고, 조직은 상황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본사 인력과 인프라 투여, 과감한 의사결정을 아끼지 않았다.


  No players is bigger than the club

 

2년 반 동안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회사 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업했고, 그 과정에서 25살 김덕영이 원하던 대로 4개 정도의 유통/물류 대기업에서 과장급으로, 스타트업 2곳 정도에서 물류리더로 합류 제안을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소비환경 변화는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고, 물류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외부에서 보는 나는 꽤나 매력 있는 플레이어로 비친 것 같다.




팀프레시 본사 외관 건물 사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알 수 있겠지만, 나는 팀프레시에 남는 의사결정을 했다.

28살의 내 꿈은 더 이상 대기업 취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B2B/B2C 구분 없는 물류 컨설팅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컨설턴트가 나의 꿈이 되었고, 그 꿈을 하루라도 더 빨리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최단 경로는 우리 조직에서 더 많은 도전과 실패, 성취를 맛보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겠지만, 31살이 될 때 즈음 지금의 꿈은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다.


22년 1월, 29살의 김덕영은 140여 명의 조직원과 1,200여 명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물류 본부장이 되었다. 센터장이 되고 싶어서 급하게 대학을 준비했고, 대기업을 가고 싶어 조직에 합류했지만 팀프레시에는 그 이상의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조직문화(비전)’가 존재한다. 개개인에게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고 그것을 지지해주는 팀과 경영철학이 지금의 그것을 만들었다. 각자의 꿈은 모두 다를 것이고 그 종착지는 누구도 알 지 못할 것이다. 다만, 팀프레시의 합류가 각자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서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동료들과 10년 뒤 어느 날에, 각자의 영역에서 성공을 맛본 후 조금은 거만하게 술 한잔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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