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지독한 감정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불씨 같지만, 이내 그것은 커지고 커져 굉장한 우월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삼키는 사랑이 되기도 한다.
연민의 반대편에 질투가 있다. 시기와 부러움이 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성공과 잘됨에 본능적으로 경계를 느낀다. '나'라는 점을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에 콕 찍어둔다면 아마 그 점은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백의 미를 남겨두는 점묘화가 될 수도, 더 뻗어나가 어떤 곡선과 직선을 그리는 그림이 될 수도, 그 점은 정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흰 도화지에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찍기 시작하면 나는 그 점보다 작거나 크고, 아래에 있거나 위에 있고, 더 동그랗거나, 더 색이 짙거나 옅은, 다른 '점'을 신경 쓰는 또 다른 하나의 '점'에 불과하도록 탈바꿈한다.
나라는 '점'과 내 '도화지'에 다른 이들을 잔뜩 들이고 나면 나는 설 자리가 없다. 기준은 자꾸 바깥으로 흘러간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것', 또는 '다들 하는 것', '내 나이쯤 되면', '여자라면', '남자라면', '나 정도면', 수많은 가정이 따라붙어 더이성 내 '점'이 보이지 않는다. 점을 잔뜩 뒤덮은, 다른 그림에서 넘어온 얼룩들이 내 도화지에서 나를 찾을 수 없게 한다.
시기와 부러움과 질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나에게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고, 목표가 되기도 하며, 새롭게 시야를 넓혀주는 영역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적 자극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노력하게 하고 시도하게 한다.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나아가도록,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누가 그 노력을 뭐라 하겠는가?
다만 내 도화지에 그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나의 그림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그림을 잠시 바라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거나, 다른 사람의 그림만이 정답인 것처럼 옮기려고 한다면 나는 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내 점을 찍을 수 없다. 나는 나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그림은 내 손에 달렸다. 내가 쥔 연필에 달렸다. 그래서 계속 초점을 내 안으로 가져와야 하는 이유이다.
질투가 연민의 반대편에 있다 하였다. 그럼 연민은? 반대로 내 그림을 쥐고 다른 사람의 그림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그림에 점을 찍으려는 행위이다. 나아가 내 점이 돋보이도록 누군가의 그림을 내 도화지에 옮기게 되는 행위이다.
그 일 또한 결코 내 그림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 내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내 도화지 위이다. 다른 사람의 그림에 안타까워하고, 점을 찍고, 붓을 덧대고, 잉크를 튀기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 사람은 그것을 원하고 있는가?
설령 원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그림에 손 대주기를 누군가 원할 때 우리는 '네가 잘 그릴 수 있다'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네 그림은 네가 그려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우린 가끔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서 경계를 놓친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란 선을 넘고 서로를 침범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여기에 있고, 네가 그곳에 있는 그 상태에서, "오늘 네가 쓴 물감이 네 그림과 참 잘 어울린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네가 오늘 그린 그림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지네." 그렇게 주고받을 수 있다. 또는 "오늘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네. 무슨 일 있어?" 물을 수 있다. 궁금해 할 수 있다.
관심을 갖는 것, 그 사람의 어떤 말과 행동에 대한 내 느낌과 생각을 전하는 것, 상대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한 내 경험을 나누는 것, 또는 어떤 경험을 나누고 그에 대한 내 감정을 전하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
나는 내 도화지 앞에서, 너는 네 도화지 앞에서, 그렇게 각자의 그림을 그리자. 때로는 나란히 그림을 함께 두자. 어느 날 그 그림이 이어져 더 큰 감동을 주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여럿이 모여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순간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다시 내 그림으로 돌아오자.
부러움도 나에게 더 집중하는 기회로 사용하고, 연민을 당신에게 주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전한다면, 그 어떤 감정에도 나쁘고 좋은 것은 없다.
오늘 질투했는가? 오늘 연민했는가? 당신은 당신의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도화지를 더 멋지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 마음을 알아주자.
누군가를 연민하고 있다면, 그 안에 내 모습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린 우리가 경험한 불행만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연민이 탄생했다면, 찬찬히 들여다 보라. 그 안에 내가 알아채지 못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숨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