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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일을 시작하다

김 차장의 퇴사 그 후 삶에 대해 20편

한 여름 등에 소금기가 마르지 않으면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을 경험해 보다.



중개사무소 일을 타의에 의해 정리하게 된 후 

바로 몸으로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흔한? 운전을 잘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기에,


아직은 건강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 일들을 경험해 보았지만, 인상적인 몇 가지를 언급해 보자면



소위 몸으로 하는 일 역시 내가 하고 싶다고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특히, 대학생들 방학기간이 맞물려 있는 기간에는 같은 시급이면 젊은이들을 선호하는 것이 부리는 측면이나,

체력적인 측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인지, 일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측이 불가하다는 점.

전날 늦은 시각 혹은 (이례적이긴 하지만) 일이 있는 당일 새벽에 일을 잡아서 하는 경우도 있게 되어서,

아내의 출근 일정, 아이 등하교(등 하원) 일정 등 여러 가지 것에 있어 예상이 불가한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되어서 일정이 꼬인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딴짓?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점.

일반 사무 업무를 했을 적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하루에 개인 인터넷 서핑/채팅/기타 커피타임 등 

일 자체에 오롯이 집중했던 시각이 더 적었던 반면에, 이 몸으로 하는 일은 '늘 누군가가 날 감시하고'

절대 딴짓을 할 수 없는. 심지어 택배 상하차의 경우 물 마시는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소득은 1/3 수준이라는 점.

아주 힘든 일의 경우 최저시급을 넘는 급여를 주었지만 다수의 일자리는 최저시급 수준 혹은 그 이상을

주는 정도로 일의 강도나 몰입? 은 원던 원치 않던 사무 업무에 비해 더 높았지만 받게 되는 보수는

아주 적다는 점. 직접 겪어 보니, 학교 다닐 때 왜 어른들이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인지 알겠더군요.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 보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인 듯합니다.)



하대는 기본, 나이/출신 등 그 어떤 대접? 도 기대하면 안 된다는 점.

경험이 0(ZERO)이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에 가면 군대 신병과 같은 수준의 대접을 받게 됩니다.

(아 물론 신병처럼 케어를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내가 몇 살인지 그전에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고 지금 하는 일에서 얼마나 숙련도가 있는지

경험(소위 짬밥)이 있는지에 따라 20대 초반도 선임 역할과 관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몸 쓰고 땀 흘리는 일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조카 뻘 되는 친구들에게 허리 숙이는 것이 어색했지만, 

바뀐 환경에 빨리 적응하지 못해 내면 다음 일거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 후 

어느새 적응하게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회사 다닐 때 이렇게 맞추고, 허리를 숙였더라면.." 하는 후회 아닌 후회도 들었습니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오늘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중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경험했던 일 들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합니다.


K리그 2부 리그 진행요원

경기 시작 4시간 전에 일단 집결을 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서울 이랜드 fc'의 홈구장인 '목동 주경기장'으로 이동을 합니다.

이 일은 보통 15시에 시작해서 21시 30분 정도에 종료가 되는데 보수는 

세금을 공제한 후 '오만 오천 원'을 받게 됩니다. 


처음 이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버스 한 번이면 이동 가능)와

당일 현장에서 보수를 지급해 준다는 메릿? 때문이었습니다.


덤으로, 수준 높은 경기력은 아니지만 2부 리그 축구경기도 가까운 곳에서 

관람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집결 후 관리자들의 간략한 당일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먼저 식사를 하게 됩니다.

(식사는 단가 4,000원 미만은 늘 동일한 도시락 메뉴)

바닥에서 각자 앉아 식사를 한 후 경기장 내부에 선수들 얼굴이 들어간 입간판과 

그 외 안내간판, 펜스 등을 설치하며, 푸드트럭이 와서 음식을 판매할 수 있는 인프라를 

사전에 세팅해 주기도 합니다. 


그 뒤 관중들이 입장하기 20분 전부터 각자 지정된 위치에서 계속 서 있습니다.

쭈그려 앉거나 기대서도 안되며 물론 입수도 안되며 화장실 역시 교대로 허락을 받고 가야 합니다. 


경기 종료 후 관중들이 퇴장 후 경기 전 설치했던 입간판 등 설치물과 선수 및 코칭스테프들이 앉은 벤치까지

다 원상 복귀 후 관리자의 퇴근 허락이 떨어지면 줄을 서서 봉투에 당일 일당을 지급받고 

집으로 귀가를 하게 됩니다. 

7~8월에 이런 일을 하고 집으로 가게 되면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그 대가로 지급받은 돈 5만 5천 원.. 


일 자체가 어렵거나 한 그런 건은 없지만, 더운데 계속 땡볕에 서 있어야 한다는 점.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간식을 먹으며 경기를 즐기는 부모가 있는 반면,

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그 시각 아이는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면 생각하게 되는 그 시간들.


그런 것들이 인상 깊었던 일 같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은 진행형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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