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차장의 퇴사 그 후 삶에 대해 19편
내 집을 팔려는 사람에게는 팔리지 않는 초조함.
사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생각보다 쉽게 내려가지 않은
매도호가로 인해 매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감? 과 달리,
몇 달간 잘? 다녔던 곳에서의 정리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고 또 정리할 것조차 없었습니다.
소장(일반 점포의 경우 사장이죠)의 전화 한 통.
비 대면의 해고였습니다.
이 쪽일을 하기 전, 소속 공인중개사의 고용해고 통보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제가 경험하게 되니 참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당시 느꼈던 기분은 참 참담하고 '더러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믿었던 존재에 대한 또 한 번의 배신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생면부지의 관계도 아닌, 잘 알던 이의 '호의'로 먼저 일 하자는 제안을 받고 성실히 임했다고 생각했으나,
'돈', 거래가 없는 상황에서 소속 공인중개사였던 저는 사무소 운영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생각과
또 한 번 어떤 존재나 대상에 내 경제적 운명을 믿고 의지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컸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사무소에서 나온 것이 올해 5월 초였습니다.
막상 나오고 나니, 어디에 먼저 전화를 할까 하다,
역시 생각나는 곳은 아내밖에 없더군요.
이번엔 또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공인중개사 일 잘 배워서, 내 사무소 차린 후 보란 듯이 일어설 것이라고 몇 번이나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무슨 이야기로 어떻게 변명 아닌 변명을 또 해야 하지..
당장 내일부턴 뭘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의 정리를 다 엉키고,
저의 억울함? 하소연만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 부끄럽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아내에게 푸념했던 그때의 어리석은 감정과, 결국 나 스스로 내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더 냉정하게
팽개쳐지는 것이 야생? 의 세계라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그때 믿었던? 선배로부터의 비 대면 해고 절차로,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었습니다.
(이는 어떤 식으로 던 회복은 불가할 듯싶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었고 제 사정을 아는 상황에서 다시
저에게 그런 식의 관계 정리를 통보했기에. 잊힐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일 듯싶기 때문입니다)
규모와 기간, 그리고 제 관여도의 차이에 있어 비할바가 아니었을까요,
중개사무소에서 해고 통지 이후 J일보 해고 때와는 달리, 단 돈 몇 만 원짜리 '품팔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일 저 일 마구잡이로 지원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콜센터와 소속 공인중개사 일) 일과는 달리
이때부터 여름의 끝인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저의 일용직 잡부의 경험이 또 시작이 되기 시작하는데요,
비가 오면 비를 다 맞고 더위가 오면 더위를 몸으로 다 노출되는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길 위에서의 경험은 새로운 경험과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