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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의 반성?, 그리고 박탈감

김 차장의 퇴사 그 후 삶에 대해 23편

매일 길 한복 판에서 서서 생각하며 반성하고, 

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시간들..



(백화점 주차장 이야기 마지막 편입니다)



학생들의 개학 시즌에 맞춰, 상대적으로 아르바이트 TO가 여유롭여진 점은 장점이었지만,

그 반면 젊은 친구들이 나오지 않아, 40대 중반인 제가 YB에 속해져 버려서 

주차장 일을 잡게 되는 날엔, 늘 지상으로 올라가 '수신호'업무 배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날이 더워지면서 휴가철에 혹서기를 피해 나오지 않은 분들이 많이 있어서,

수신호 중에서도 기피하는 '횡단 근무'포스트를 많이 배정을 받게 되었는데요


(참고로 횡단 근무란, 백화점 입구에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 행인과 차량의 통제를 하는 일)


말 그대로 명동 길 한 복판에 밀짚 모자와 하와이안 셔츠 유니폼을 입고 서서,

지나가는 차량을 통제하고 행인들을 안전하게? 건너게 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설마 내가 이런 일? 까지 하게 될 줄"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죠..

백화점이나 놀이동산 대형 쇼핑몰에 소비 고객으로만 방문할 때 늘 지나치며 보이던 그 아저씨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더운데 저기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주 잠시 잠깐 생각했던 지나가던 이의 모습이 제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길 위에 처음 서게 되었을 때는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정확한 표현으론 쪽팔렸습니다..)


을지로입구면 내가 아는 이들도 지나칠 수 있겠다는 생각과, 

사람들이 날 처다 보는 시선이 '원숭이 보듯 한다'는 저만의 착각으로(실상은 별 관심이 없었겠지만요..)


여하튼,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나가서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위험하다.


일단 차량이 제 수신호에 따라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물론 행인들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일단 위험한 일이라는 점. 과속 차량이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전방 미주 시 차량 때문에 몇 차례 충돌 위험도 있었습니다. 

아찔하죠.. 



차와 행인들의 무시


교통경찰이 아닌 이상,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제 수신호(GO or STOP)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멈춤 시그널을 보내도 '경적'을 울리며 저를 위협하며 

지나가는 차량도 부지기수이며

행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멈춰 달라고 하는 신호에도 아랑곳 않고 휴대전화를 묵묵히 보면서 걸어 

가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이 사람들 다치나 마나 저와 무관하지만) 이렇게 보행자 통제가 안되면 무전을 통해서

관제실에서 핀잔을 듣곤 하기에, 가급적 협조를 구해 가면서 일을 봐야만 했습니다. 


여하튼 서있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죠.



상대적 박탈감


백화점 메인 입구로 가는 초입에 들고 있는 종이봉투 브랜드를 안 보려고 해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 브랜드의 가방이나 옷은 내가 여기 몇 시간을 서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왜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 했던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을 또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


뾰족한 수 없이 이렇게 하루 일당 9만 원으로 저런 부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늘 집에 가는 길은 육체적 피로와 함께 정신적으로 더욱 피곤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반성. 


도대체 무엇을 잘 못 했을까 난.. 내가 뭘 잘못하고 살아왔기에 후텁지근하고 땡볕에 서서

비까지 올 땐 비를 몸으로 맞아가면서 여기에 서 있을까. 

성실하지 못해서? 사치스럽게 살아서? 아님 공부 혹은 대인관계?


스스로 벌을 받는 시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사원증을 메고 지나가는 인근의 회사원들을 볼 때면 내가 지금 저들과 다르게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내 안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여전히 탓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생각과 반성들.. 




저는 아직, 뾰족한 수를 찾거나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백화점 주차장 일과 건설현장 잡부일을 병행하면서 계속 궁리 중이죠. 


몸이 힘들면 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맞는 듯하면서도 또 아닌 듯 하지만, 

당분간 어떤 묘수가 나올 때 까진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벌써 퇴사한지도 1년 7개월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야기 하지만 '고민의 깊이와 시간'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방향을 찾았다고 해도 결국 '이른 실행과 수정'이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아직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오늘도 길 한 복판에 서서 많은 고민을 하는 하루가 될 듯합니다. 



지금 책상에 앉아 이 글을 보시게 될 수도 있는 여러 분.

다가 올 퇴사에, 준비하세요 



(다음 편에 계속)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은 진행형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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