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의 이해
환청이란 외부 자극 없이 소리를 듣는 현상으로, 혼자 있을 때 목소리가 들리는 등의 증상이 대표적인 양상입니다. 우울감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우울감에 더하여 환청 경험을 호소합니다. 심각한 상태가 아닌지, 조현병이 발병한 것이라 빠르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걱정 어린 질문들을 받게 됩니다. 환청을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원인과 상황이 있습니다. 진료 경험 중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사례들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4세의 여성 A씨는 2주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항상 비어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안하게만 느껴지던 A씨에게 남자친구는 지난 1년의 교제 기간 동안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A씨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A씨는 술을 많이 마셨고 급기야는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팔에 자해를 시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혼자 방 안에 있던 A씨는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렸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A씨는 자신이 환청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걱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0세의 남성 C씨는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습니다. C씨는 1년 전부터 직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애써 무시하며 지내왔습니다. 6개월 전부터 C씨는 동료들이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집 안에 장치를 해 두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집에 있는 모든 전자 기기를 분해해서 살폈습니다. 직장에서는 사람들을 피했고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몸을 숨겼습니다. 3개월 전부터 C씨는 전파를 통해 거래처 사장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C씨의 집을 방문한 C씨의 어머니는 C씨가 어머니는 듣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답하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내과 의사는 기침의 성질에 따라 감별해야 할 질환들을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폐렴 환자의 기침은 대개 가래를 동반합니다. 계속되는 마른기침 때문에 병원에 온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폐렴일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환청은 내과 질환에서의 기침과 마찬가지로 정신과적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의 한 가지이며 그 자체로 어떤 질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폐렴, 결핵, 천식, 역류성 식도염에서 모두 기침이 동반될 수 있듯이 조현병에서도, 수면 장애에서도, 기분 장애에서도 환청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연기나 매운 냄새를 맡으면 기침을 하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 환청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내과 의사가 가래 유무로 기침을 나눌 수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현실 검증력의 유무에 따라서 환청 증상을 나누어 생각하게 됩니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현실 검증력, 쉽게 말해 환청이 실제가 아니라고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져 있는 환청을 접할 때 정신과 의사는 조현병 스펙트럼 또는 정도가 심한 기분 장애를 고려하게 됩니다. A씨의 예에서와 같이 실제로는 없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이것이 ‘환청’, 그러니까 실제가 아니라고 인지할 수 있어 현실 검증력이 유지되고 있다면 전형적인 조현병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환청을 우리는 가성 환청(pseudohallucination)이라 부릅니다. 현실 검증력이 유지된 상태에서의 환청은 기분 장애, 불안 장애에서도 흔하게 동반됩니다. 군대에서의 생활을 어려워하여 적응장애가 생긴 병사들도 흔하게 환청을 보고하며 역시 가성 환청에 해당합니다.
환청을 현실 검증력 한 가지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위에서 이야기한 기준에 더해 가족력, 증상의 발생 양상, 기타 동반 증상,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하여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환청이 모두 중증의 질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있다면 정신과적 문제에 대해 의사의 조언을 받으시되, 스스로 초조해질 만큼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