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면 또 괴팍한 상사의 얼굴을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요. 남자친구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많이 우울해요.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슴에 납덩이를 올린 것처럼 답답해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요. 삶의 의미가 없고 공허해요. 부부 생활에 문제가 있어요.
정신과에 내원해서 도움 또는 조언을 구하는 이유는 각자의 삶의 방식만큼이나 다양하다. 사람이 공감과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경험이 필수적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정신과 의사들은 이만큼 다양한 경험들을 가지고서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소 직설적인 표현으로는 뭐가 그렇게 대단히 아는 것이 많아서 안 끼는 곳 없이 훈수를 두느냐고, 보다 완곡한 표현으로는 다양한 주제로 상담이 이루어질 텐데 어떻게 다 대답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정신과적 평가와 치료는 정형외과에서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에, 위의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정형외과 진료 상황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겠다.
30대 남자 환자가 어깨의 통증으로 병원에 왔다. 어깨를 다친 것은 벤치 프레스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야구를 하다가 생긴 부상일 수도 있다. 주짓수, 골프, 철봉, 어깨에 부상이 생길 수 있는 운동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의사는 다친 부위를 파악하고, 어떤 동작이 해당 부위에 무리를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런데, 어깨 특정 부위가 손상되었으니 어떤 동작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이, 의사가 꼭 야구, 철봉, 골프, 주짓수를 모두 할 줄 알아야만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손상된 부위와 해당 부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동작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각각의 운동 상황에 대해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도 이와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무한히 다양하지만 그런 삶의 모습을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 의식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비슷한 패턴이 수없이 반복된다. 정신과 의사는 내원한 사람의 삶을 듣고, 핵심이 되는 주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겉보기에 경제적 문제와 가족관계의 어려움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심리적 좌절감이 공통된 핵심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접근 방식은 비슷하다. 똑같이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더라도 한 사람은 권위적 대상과의 문제,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인 친밀감 형성의 문제 때문일 수 있다. 앞의 문단에서 말했듯, 겉으로 드러난 문제의 이면에 있는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일이다.
다만, 이렇게 답변이라는 글을 길게 적은 뒤에도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나 다소 공격적이었던 위 코멘트의 경우, 이런 내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정신과 의사의 ‘내가 삶의 정답을 줄 수 있다’는 식의 훈계가 유쾌하게 들리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정형외과에서 어깨 사용 지침을 주고 회복을 도울 수도 있지만 각각의 운동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처럼 정신과 역시 그렇다. 자신의 지식에 대해 과도하게 자신감을 가진 나머지 영역을 지나치게 넓히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