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도하 숙소 부엌 한편에는 보물창고가 있는데, 그건 바로 컵밥, 라면, 과자, 죽, 건미역, 잡곡 등 한국에서 공수해온 음식들이 쌓여있는 캐비닛이다.
기본적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에 진심이기도 하지만, 한국 음식은 나에게는 단지 ‘음식’을 넘어 특별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만석에 힘들었던 비행 끝에 먹는 라면 한 봉지는 나를 위로해 주고, 아파서 움직일 힘도 없을 때의 죽 한 봉지는 엄마의 약손을 대신해 준다. 뿐만 이랴. 향수병 초기 긴급 대처로는 한국 예능을 보며 먹는 아껴두었던 한국 과자만 한 것이 없고, 50도 가까이 되는 사막의 폭염도 얼음 동동 띄운 냉면 한 그릇이면 견딜만하다.
한국 식재료로 꽉 차 있는 냉동실과 캐비닛을 열어 보기만 해도 행복했었는데... 계속된 인천 비행 *비딩 실패와 인천 비행 만석으로 인해 한국에 가지 못한 지 4개월이 넘다 보니 나의 보물창고는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라면 한 봉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한국 김치도 먹고 싶고, 라면이랑 컵밥 및 생필품이 필요하던 찰나, 감사하게 5일 오프를 받았고, 아껴두었던 *애뉴얼 티켓을 사용해서 몇 주전 짧게 한국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한국 음식도 먹고, 가방 가득(정말 한가득) 한국 식재료와 생필품을 가져왔다. 도착해서 하루 가까이 짐을 풀면서 방 정리도 하고, 다시 꽉 찬 나의 보물창고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자! 냉동고와 캐비닛도 채웠겠다. 이번 오프에는 한식 파티를 해볼까나.
*비딩 : 한 달에 10개씩 다음 달 스케줄을 신청할 수 있다. 특정 구간 비행을 비딩 하기도 하고, 원
하는 날짜의 오프를 비딩 하기도 한다. 비딩은 자유이나,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애뉴얼 티켓 : 회사에서 1년에 한 번 주는 무료 티켓이다. 원래는 집에 가라고 주는 티켓인데, 무료
이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 등 티켓 가격이 높은 곳에 사용하는 직원들도 꽤 있다.
비행기의 빈자리 여부 및 예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컨펌 티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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