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잠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무의식 중에 호텔방 문 밑으로 시선이 가는 것.' 이 두 가지의 징크스가 있다. 이것은 나에게 그날의 비행기가 연착될 것이라는 사전 알람 같은 존재인데, 무려 적중률이 90프로 이상이다.
픽업 전 두 시간을 기준으로 맞춰놓았던 벨소리가 울린다.
하아아아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고 온몸을 움직여봐도 도통 잠이 깨질 않는다.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
‘더 자고 싶다... 더 자고 싶다... 더 자고... 앗? 혹시 오늘...?’ 평소에 잘하지 않는 ‘5분만 더’를 몇 번이고 되뇌고, 알람이 서너 번이나 더 울린 후에야 뭉그적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알람이 울리면 바로바로 일어나는 편이다. 알람을 끈 후 다시 잠이 들었다가 혹시나 다시 잠이 들어 비행 스케줄에 늦을까 봐 생긴 습관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세 번이 넘는 알람으로도 기상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너무 졸릴 때가 있다. 5분 간격으로 무한 반복되는 알람의 고리를 끊고 겨우 일어나는 그날은 매우 높은 확률로 비행기가 연착된다.
씻고 화장을 하며 분주히 움직이는 내내 나도 모르게 호텔 방, 문 아래로 향하는 시선.
몇 번이나 무의식 중에 도어 밑 틈새를 살펴보다가 이윽고 스스로의 행동을 인지한다.
그러고는 드는 생각. ‘아. 혹시 오늘...?'
승무원들이 레이오버 시 묵는 대부분의 호텔들은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호텔에서 공항까지의 픽업 시간이 연기될 경우, 새 픽업 시간을 프린트를 해서 호텔방 문 밑이나 옆 틈새로 넣어주고는 하는데, 나의 두 번째 징크스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평소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데, 비행 갈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자꾸 방문 밑으로 시선이 가는 날. 그런 날 역시 매우 매우 높은 확률로 비행기가 연착된다.
실제로 연착 알림 종이가 방문 밑으로 들어오는 날도 있고,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 딜레이가 발생하는 날도 있지만, 이 두 가지의 징크스는 거의 매번 적중한다.
그랬다. 그날도 그랬다...
이상하게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침대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일어날 수가 없고, 화장하며 짐을 싸는 그 와중에 계속 방 문 밑으로 시선이 갔다.
그러고는 예감했다. 아... 오늘은 징크스가 두 개 다 일어났네. 비행기 연착되겠구먼.
이 비행의 뒤에는 고대하던 추석맞이 보름 짜리 휴가가 기다리고 있으니, 아닐 거라 애써 믿으며 화장을 하고 있는데... 띠링.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비행기 연착되었음. 새로운 스케줄 확인 요망.
어허. 이건 안 좋은 징조다. 호텔 종이도 아니고. 회사 문자는... 엄청난 딜레이를 의미한다.
서둘러 확인한 회사 시스템에는 비행기가 무려 3시간이 딜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어진 전화.
폭풍우가 심해서 우리가 타고 나가야 할 비행기가 공항으로 못 들어왔단다.
오던 비행기가 다른 곳으로 회항하였고, 오늘의 비행은 취소되었다며, 하루 더 머물라고 한다.
도하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편도 16시간 반이었고, 도하로 돌아가는 길이 15시간은 되는데...
왜 하고많은 날, 하필 오늘. 내 휴가 전에 미국에 폭풍우가 몰아치는가...
한국 가려고 티켓도 예매했는데.
마음을 다잡으며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한국에 하루 늦게 들어갈 것 같아요...ㅜ 어쩌면 이틀...”
승무원을 식구로 둔 가족이라 그런가, 다들 생각보다 태연하다.
"오? 그래?. 조심해서 와. 스케줄 정해지면 알려주고:) 밥 잘 챙겨 먹고:)"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예매한 티켓을 취소했다.
저번 설날 휴가는 코로나 때문에 난리고. 이번 휴가는 폭풍우로 난리구나.
직업의 특성상 스케줄 변동은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휴가 전에 급작스러운 변동은 정말 속상하다.
악! 징크스 너 오늘 왜 나타난 거야. 진짜 밉다 미워.
결국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하루 늦게 탑승했지만, 한국에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 무사히 입국하였다. 그리고 며칠간 한국에 몰아친 폭풍우의 위력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부디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