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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n 12. 2023

비밀

사랑에 관한 단편집


하진은 묻지 않는다. 그의 특기다. 궁금하지 않아서 묻지도 않는건데 사람들은 뭣 모르고 그런 하진을 좋아한다. 너에 대해 묻는다는 건 네 약점을 훔치겠다는 뜻. 너를 묻는다는 건 너에게 흠집을 내어 보겠다는 암시. 그런 건 다들 귀신같이 알아서. 묻지 않는 하진의 곁에서 모두가 안도를 느꼈다. 그의 주변에서 감히 안전을 넘봤다.


수한도 그랬을까.

그도 묻지 않는 하진에게 안도를 느꼈을까?


하진은 참는다. 매번 새로운 상처를 달고 나타나는 수한에게 상처의 출처를 묻는 일을. 참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무관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침묵도 있음을. 다만 걱정이었다. 너무 걱정되면 이유마저 묻고 싶지 않아진다는 걸. 이기적이지만 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하진은 스스로에게 이물감을 느꼈다. 질문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혀를 깨물었다. 그러면 수한은 영문도 모르고 눈짓으로 말했다. 턱에 자꾸 힘주지 마, 왜 이렇게 씅이 났어. 하진은 되묻고 싶어졌다. 대체 뭘 두려워하는 거야? 어쩌면 그 자신에게 묻고 싶었을 질문이었을지도. 그러나 봄 한철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하진은 묻는 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여름은 이상했다. 기막힌 더위의 전조를 알리듯 하늘에선 까마귀가 울어댔고 그게 하진을 참을 수 없게 했다. 속이 꽉 막혀 에어컨 바람으로 머리를 말려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친구들 사이 나 홀로 건조하자니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아 자꾸만 위를 쳐다보게 만들었다. 그렇대도 제 위치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하진은 수한의 곁에서만 속까지 서늘했는데, 이런 게 사막 속 오아시스? 신기루가 아닐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추웠던 겨울과 심란했던 봄 다음에 까마귀가 있을 줄은.


"최하진, 표정이 왜 그럴까."


왜애그르까아- 길게 늘어뜨리는 수한의 말끝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고,


야, 옥상에 자꾸만 새들이 날아와 앉아. 이상해.


그게 하진을 더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


그런 때가 있다. 뭐든 참을 수 없어지는 때. 또 누구에게든 그런 사정이 있다. 남들은 다 이해 못해도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사정. 그 두 개가 만난 날이었다. 하진이 기어코 입을 떼버린 그 날은.


"수한아, 나는 네가 그만 싸우고 다녔으면 좋겠어."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사에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농땡이 치는 양수한에게 돌을 던졌다. 무심코 던진 돌에 죽어버린 개구리리처럼. 수한은 돌에 맞았을까.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뒤따르는 걱정들의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싸우긴 무슨."


웃음으로 무마시켜보려는 게 티가 다 났다. 멍청한 양수한. 이럴 땐 눈치 없는 척 넘어가줘야 한다. 네가 찌른 게 약점은 맞는데 도무지 다치고 싶지가 않댄다.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니 뭐라도 덧붙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야, 나 진짜 안 싸워. 내가 싸우고 다닐 놈으로 보여?"

"아니."

"…."

"그렇게 안보여서 이상해."


그렇지만 하진은 물러서지 않는다. 이번이 아니면 영영 알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지금도 한 만사천키로는 멀게 느껴지는 망할 양수한이 아예 멀어질 게 뻔해서. 밀어붙이기로 한다.


"안 싸우고 다니면서 상처는 왜 달고 다니는데. 어디서 어떤 식으로 엎어져도 그렇게는 안 다쳐."


수한이 동요한다. 동요. 다른 말로 하면 고요한 연못에 날뛰는 물고기 풀기. 웃음으로 포장하는 나쁜 버릇 고치기.


"걱정 돼서 그래. 안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정적이 이어진다. 쨍한 햇빛이 수한의 이마에 드리운다. 가려주는 구름이 한 점도 없다. 무방비 상태. 하진은 계속해서 침묵으로 묻는다. 혹시 나의 말이 너에겐 무심코 던진 돌이었느냐고. 애초부터 고요한 적 없던 연못에 내가 물고기를 풀었느냐고. 수한은 손우산을 만들어 하진의 머리 위로 처마를 만든다. 그러다 뒤로 넘겨 그대로 안아온다. 하진은 그제서야, 무심코 던진 돌 같은 게 아니라 작정하고 찌른 칼이었네- 깨닫는다.


"그런 거 아니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살가웠다. 와중에도 너는 나를 달래려 들어. 난 지금 네가 너무 안쓰러운데. 왜 안쓰러운 줄도 모르면서 안쓰러워하고 있는데.


"그냥. 아빠가 때려, 나를 자꾸."


그 말을 하는 수한의 표정이 어땠던가. 하진의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진다. 쓰다듬는 손길이 이제는 운석 같다. 머리를 울린다. 실은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그런 상처를 달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웃을 수는 없는 거잖아.


"너는 맞고 다니지 마. 그럴 일 없겠지만, 이게 또 막 이유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서."


나를 위한다고 하지만 전부가 서툴다. 아직은 너무 어린 나의 수한. 만사천키로 쯤 멀어보이던 수한이 오늘은 동생 같다. 이름 앞에 소속을 달아 거리감을 좁혀본다. 끝을 늘이는 말투. 제 어깨를 토닥이는 손. 바람에 날리는 갈색 머리칼. 연한 쌍커풀과 목 한가운데 박힌 점. 시퍼런 멍과 검붉은 상처. 받혀 입은 검정색 티와 노란색 명찰. 하진은 앞으로 저가 해야 할 것들을 떠올린다. 결심을 한다.


어떤 사랑은 출발 없이도 도착을 한다. 연민은 사랑의 최종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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