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 워홀 3~5개월 차
펜더 아일랜드에서의 섬생활을 마치고 이제 다시 밴쿠버.
퇴사한 지는 어느 덧 5개월, 한국을 떠나온 지는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열여덟 이후로 아무 일도 안하고 이렇게 오래 쉰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낯설다.
습관처럼 들어가는 링크드인 피드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새로운 논문이나 컨퍼런스, 승진, 창업, 대학원 입학과 졸업을 알리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나는 여전히 5개월 전 그때에 머물러 점점 뒤쳐져가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 그냥, 잘하고 있는 진 모르겠는데 적어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지 않냐고, 이럴 거 다 예상하고 온 거 아니냐고, 적당히 차가우면서도 다정한 위로를 건네본다.
밴쿠버도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요즘은 종종 과거 서울에서의 어떤 장면이나 익숙했던 장소가 눈 앞의 광경에 겹쳐 떠오르곤 한다.
Kitsilano 해변의 야경을 보면서는 한강대교 아래를 달리며 바라보던 야경이 생각나기도 하고, 밴쿠버 한식당의 어딘가 심심한 떡볶이를 먹으면서는 납작당면과 분모자 가득한 진한 맛의 배달 떡볶이가 그립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냥 가끔씩 어떤 장면들이 떠올라 그 때나 그 장소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는 지금 익숙한 것들이 그리운 거구나.
하긴, 3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낸 곳과 고작 3개월의 시간을 보낸 이 곳에서의 마음의 깊이는 다를 수 밖에.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 대신 하나하나 공들여 이 곳의 깊이를 더해가야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미루며 게으름 피우는 건지 아니면 정말 휴식이 필요한 건지 이제는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땐 언제 얼마나 쉬어줘야하는 지 몰라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밀어붙이곤 했다.
그리고 끝끝내 생각한만큼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기가 죽어버렸었지.
반대로 여기 캐나다에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마치 단잠에서 깨어나면 마주할 세상이 두려워 자꾸만 미루고 있는 건 아닌 지 잘 모르겠다고 답을 구했다.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휴식과 열심의 사이, 그 적정선은 어떻게 찾는 거냐고 여쭸다.
“교수가 강의를 할 때 일어서서 하든 앉아서 하든 둘 중 하나이지 애매하게 그 중간인 투명의자 자세로 강의를 하진 않잖아요. 어쩌면 중간이란 게 없을 수도 있어요, 그냥 휴식과 열심의 적정한 반복일 뿐일지도요.”
선선한 날씨와 친절한 사람들이 좋아 밴쿠버를 택했다.
그렇지만 사실 밴쿠버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더운 날도, 종일 비내리는 긴 겨울도, 그리고 되려 무례한 사람들도 있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떨 지 궁금해서 왔다.
여기서 새로 발견한 나도 있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도 있었다.
그냥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됐을 걸 나는 대체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거야?
괜히 투덜거렸다.
갑자기 사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야 너가 염소자리니까 그렇지!”
이런, 한 달만 늦게 태어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