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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 Feb 16. 2022

마음 충전소

 저는 마음이 지칠 때 부모님 품에 안깁니다. 말이 좋아서 안기는 거지 실제로 보면 부모님 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겁니다. 부모님은 ‘얘 왜 이러나, 또 이러네, 그만해라.’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을 아시는지 품을 열어주시고 토닥여주십니다. 부모님의 품은 정말로 따뜻합니다. 어릴 적 느꼈던 부모님의 사랑이 다시금 느껴집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품에 안겨 자랍니다. 신생아적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부모님 품에만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안정감을 얻습니다.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아이는 불안해서 울어버립니다. 성장하며 부모 품에 안기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부모 품에서, 부모 곁으로 공간을 넓혀갑니다. 부모와 아이 간에 생겨난 간격만큼 아이는 주변 환경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만지고, 물고, 먹고, 뱉어내며 다양한 감각을 익힙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넘어집니다. 울면서 엄마, 아빠를 찾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재빨리 품에 안습니다. 아이의 위험은 사라지고 이내 안정감을 회복하며 울음을 그칩니다. 충분한 안정감을 취한 아이는 다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부모의 품을 떠납니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며 아이는 조금씩 성장합니다.



 성인인 저는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만 가끔 제 역량 이상의 문제를 만날 때면 심적으로 지쳐 마음의 안식처를 찾곤 합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찾거나, 새로운 게임을 고릅니다. 한참을 고르다 어떤 영화나 게임도 선택하지 못한 채 침대위에 눕습니다.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끌려 다닙니다. 마음이 무거울 때는 즐길 거리를 선택하는 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면 유튜브가 계속 켜져 있습니다. 어제의 마음도 계속 이어집니다. 며칠을 그렇게 넋을 놓고 지내다 식사자리에서 넌지시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부모님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괜히 말했다 싶어 내일은 말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저녁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어려움을 꺼내 놓습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님을 보면 어쩜 저러나, 내 편이 맞나 싶습니다. 괜히 부모님께 시비 겁니다. 단지 내 마음을 몰라주기 때문에 짜증을 냅니다. 속상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합니다. 며칠 후 부모님께 사과 합니다. 진심이 아니었고 지금 가진 문제가 버겁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 놓습니다. 그제야 꼬여있던 감정들이 서서히 풀어집니다. 부모님께 안겨 위로 받았던 어릴 적 감정들을 다시 느낍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문제를 직면할 용기를 얻습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의 위험을 느끼고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저도 어려움에 부딪히면 부모님의 위로를 찾습니다. 표현이 미숙할 땐 목소리가 커지고, 부정을 쏟아냈습니다. 부모님께 위로를 달라고 강요하니 자연스레 나오는 단어는 불만의 단어들이었습니다. 오랜 대립 후에 겨우 화해하고 진심을 나눕니다. 지금은 부정을 쏟아내지 않고 조용히 부모님의 품에 안깁니다.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부모님을 찾아 안깁니다. 한참 위로를 얻은 후 대화하면 긍정의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부모님 품에 안기는 게 민망하실 수도 하지만 꼭 부모님 품에 안겨보셨으면 합니다. 처음이야 낯간지럽지만 안기고 나면 부모님의 따뜻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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