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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Oct 05. 2024

시장에 기대어 사는 이웃들(2)

시장은 사람을 나누지 않는다

악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인 해결책은 이것입니다. 우리 시간을 소박하고 보람있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자는 것입니다.

(얀 마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중)




앞 가게에는 새댁이 일하고 앞 가게에는 할머니들이 일하는 곳,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일하며 살아가는 곳.


하루종일 약국 앞에 좌판에서 앉아서 일하는 채소가게 할머니들은 이 골목의 터줏대감. 할머니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시장 사람들은 힘을 낸다. 나이가 들어도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일할 수 있는 힘이 있는한은 힘을 내어 끝까지 일하는 곳.


큰 슈퍼를 나와 은행으로 가는 길목에는 쭈구리고 일하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일하고 있다지희엄마는 쭈구려 채소를 팔거나 조개를 까서 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번듯한 가게에서 사는 것보다 바구니 하나놓고 파까고 마늘 까서 파는 할머니들 물건을 산다. 아마도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거 얼마에요.”

“이 거 천 원. 이 거 하고 이 거 삼천 원인데. “

“예예, 그것도 주셔요. 많이 파셔요.”

엄마는 꼭 물건을 살 때마다 많이 팔라는 덕담을 잊지 않는다. 시장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 오늘도 많이 파시라는 말.


생선 가게 아줌마들도 나이가 들어가지만 이 시장에서라면 아직은 청춘이다. 아줌마들은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가게 옆 작은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니, 뭔 놈의 사건 사고가 이렇게 많이 일어난댜."

"정치하는 양반들이 잘 하겄제."

"내가 아냐, 니가 아냐. 우리는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지. 아따, 손님 왔더라고."

 

노래를 틀어놓고 신명나게 서로 몸을 흔들다가 밥을 나누어 먹고 때로는 술 한 잔도 나누어먹는 사이. 사실 가족보다도 더 긴 시간동안 서로 얼굴을 보고 일하는 사이인지라, 어떤 때는 속 얘기까지도 한다.


"남편이라는 놈이 돈 만 가지고 술집에 뻔질나게 들락날락, 어이구.“

"어쩐다야. 손모가지를 비틀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 뭐. 니가 참아라야."


서로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로 나누며 서로 시장 안에서 더위를 견디고 추위를 견디며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는 이들.


비가 오면 내 가게 앞에 비가 떨어져서 큰 대야를 갖다 놓는다. 그 큰 대야는 내 가게 빗물만 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게 천막에서 떨어지는 빗물도 담아버린다. 눈이 오면 내 가게 앞도 쓸지만 쓸다보면 앞 가게 옆 가게 눈도 쓸게되는 일.


추운 날에는 서로 난로를 앞에서 손을 지지며 군고구마 구워 먹는 사이. 빨간색 조끼를 덧대입고 난로가에 앉아 추위를 견디는 사이.


“ 아따 이번 김장 잘 됐네. 너네는 몇 포기나 했냐.”

“ 언니네랑 100포기했지. 언니들이랑 수다 떨면서 하면 금방이야.”

“ 군고구마에는 김치가 최고라니까.”

야무지게 군고구마 먹다가 체하면 서로의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따주는 사이.

“새까만 피 나왔으니까 다 내려갔겄다. 야야. 힘들면 먼저 집에 들어가.“


파까고 마늘까느라 쌔까매진 손가락을 보며 고생하는 옆 가게 아줌마를 안타까워해주고 앞 가게 새댁이 예쁘게 머리하러 미용실 갈 때는 서로의 가게를 봐주기도 한다. 늘어가는 흰머리가 얼마나 늘었는지 서로 봐주며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지만 그냥 사는 일이 늘 그렇지 하며 받아들이는 곳.


시장은 돈을 받고 물건을 파는 곳이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격을 붙이지 않고 서로에게 많은 것이 제공되는 곳. 옆 가게가 있어서, 서로가 서로의 눈길을 볼 수 있어서 때로는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서 위험하지 않은 곳. 그곳이 신기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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