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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Oct 09. 2024

지희의 말할 수 없는 비밀

화장실


안전과 만족은 친구로부터 획득된다.(파커 팔머)




선이는 지희가 3학년 때 친해진 친구이다. 예쁜 안경에 얼굴이 예쁜 아이. 공부도 잘하고 아이가 착해서 같이 놀면 마음이 편안했다. 선이는 아파트아이다. 시장 아이가 아니다. 지희가 처음 사귄 아파트 친구.

아파트와  신기촌 시장은 큰 대로를 하나 두고 있다.그 길은 아이들의 먹고 입는 터전을 나누는 길이지만 그 길을 따라 삶의 모습도 나누고 친구도 나뉜다.


지희가 시장을 벗어나서 학교에 가기 전에 처음 만나는 길에 큰 쓰레기집하장이 있다. 시장의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곳. 지희가 4학년이 될 무렵 길을 제대로 포장공사하기전까지 큰 쓰레기 더미들이 존재했는데 그 쓰레기들에서 흐르는 썩은 물을 보며 학교를 지나가는 곳이 고역이었다.


그 쓰레기더미들이 지희의 세상과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의 세상을 나누는 강같이 느껴졌다.


선이와 더 친해지게 되어서 선이가 집으로 지희를 초대를 했다. 엄마가 지희가 놀러갈 수 있다고 허락을 해서 처음 가게 된 선이네 집.


지희로서는 처음 가보게 된 아파트.

침대와 책상이 가지런히 놓인 선이 방에서 같이 놀다가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지희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주인공네 집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희나 윤희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모습들.


식탁에 지선이 엄마가 가지런히 음식을 차렸다. 지희네 집에서, 유정이네 집에서는 모두 따닥따닥 붙어 모여 상에서 먹는데 선이네는 식탁 앞 의자에서 밥을 먹었다.


접시에 반찬들이 하나씩 올려져있고, 선이 아빠도 선이 엄마도 매우 친절했다. 지희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질문도 한다. 선이가 전학을 와서 친구를 잘 사귈까 걱정했었는데 지희랑 친하게 지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지희 아빠나 시장 아저씨들은 아이들에게 말을 걸거나 같이 밥을 먹거나 하지는 않는데 선이 아빠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말을 걸고 귀를 기울였다.


선이 동생은 1학년인데 친구들이랑 잘 사귀지를 못해서 엄마가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선이 아빠가 라면 회사에 다녀서 선이 동생들이 놀려오면 라면도 하나씩 주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배시시 웃었다. 아이가 어떤 학교 생활을 하는지 이렇게 부모님들이 관심을 갖는 구나 생각했다. 아빠가 라면 회사에 다닌다니 동네 남자아이들이 알면 난리가 나겠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지희가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물었는데 화장실이 안에 있었다. 학교 화장실과 교회 화장실에 있는 화변기와는 전혀 다른 수세식 변기였다. 어떻게 사용할지를 몰라 한참을 서있자 선이 엄마가 노크를 했다.

“처음 봐서 당황했구나.” 라고 지희를 다독였다. 앉아서 변을 보고 옆의 레버를 내려서 물을 내리라고 알려주었다.


지희는 난생 처음 보는 수세식 변기.


지희가 친구들을 데려올 수 없는 이유는 집이 시장에 있어서도 순대냄새, 생선 냄새가 나서도 아니었다. 화장실 때문이었다.


지희가 절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올 수 없는 이유


지희네는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희가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 집에는 재래식변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 윗 골목들은 다들 집 옆에 화장실이 있었고 아침 나절이면 아저씨들이라 아이들이 자기 집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지희는 자기 집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학교를 다니고 나서는 재래식 화장실은 주변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희네 집에 수세식 화장실이 없다는 것, 지희는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올림픽을 개최하고, 엑스포도 개최하는 이 나라에 사는지희라도 화장실은 지희가 어쩔 수 없는 어떻게도 뛰어넘을 수 없는 지희의 비밀이었다. 친구들에게 터놓을 수도 그렇다고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한 번도 수세식 변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지희가 부끄러울 까봐 지희를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 준 선이엄마가 고맙고 지희를 초대해준 선이가 고마웠다.지희가 선이를 그 후로도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이는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서울로 떠났고 지희는 선이네 이후로는 아파트에 놀러가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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