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사람의 빛깔이 달라지는 시간, 한 사람에게 작가의 소양이 형성될 즈음에는 무엇을 읽었느냐보다 어디에 누구와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은유, 쓰기의 말들 중)
지희가 고모네집에 맡겨질 때 지희는 아주 어렸다. 깊고 깊은 고개라는 이름의 부천의 심곡동에서도 아주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있는 고모네. 나이 든 고모 두 명과 할아버지, 이렇게 나이든 어른 세 명이 사는 아주 조용하고 적막한 집에 나이가 네 댓살 되는 아이, 지희가 맡겨졌었다.
계단 수십 개를 올라가야 나오는 집. 초인종도 아는 사람만 누를 수 있게 문 뒷편에 달았다. 마치 세상과 단절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파란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삐그덕 소리가 나면서 산에서 삐져나온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고 나무들 앞쪽으로 양옥집이 보인다. 집 현관을 들어서면 나무 바닥과 나무결이 보이는 집의 내부가 보인다. 신발을 벗으면서 보이는 전면에 큰 고모의 초상화. 여군으로 제대했다는 큰 고모의 군인시절 초상화. 사진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고모의 성격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굳게 다문 입, 다부진 하관, 앞을 응시하는 굳은 시선.
지희는 아주 조용히 그 집에서 생활했는데, 아이가 놀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지희는 맡겨진 날부터 말이 없었다.
작은 고모가 일하고 있을 때 지희가 심심해 보이면 말한다.
“마당에 나가서 놀아라.”
마당에 나가도 딱히 놀 거리는 없었다. 맡겨진 아이는 어른을 귀찮게 해서도 안 되고 말을 많이 해서도 안 된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꾹 참기 그게 규칙이다.
마당으로 나가면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집이라 부천시내가 잘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집들, 하늘, 산, 바깥 풍경을 보다가 장독대 사이를 뛰어다닌다. 혼자서 장독대 사이를 뛰어다니는 것도 재미가 없으면 마당에 쌓인 공사가 끝나고 아까워 집 한 구석에 쌓아둔 돌멩이들을 가지고 논다. 던지고 놀거나 돌로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쌓는다. 그러다 재미가 없어서 돌 더미 옆에 앉는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상상놀이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상상. 동생들이 연달아 태어나면서 엄마가 아이 셋을 시장에서 일하면서 키울 수가 없어서 맡겨진 지희.
엄마가 먼저 맡아달라고 한 것인지, 고모들이 힘들어보이는 엄마를 위해 맡아준 것인지 지희로서는 알수는 없지만 아무튼 고모네집에 있었다. 아이가 연달아 태어난 엄마와 아빠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맡아준다고 하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둘은 경제적 기반이 없는 도시 소시민이었다.
한 명은 언니를 따라서 배운 미용기술이 있었고 또 한 명은 기술이 없었다. 이들이 인천이라는 큰 도시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둘 다 일을 하는 것이었고 당시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시장 안으로 들어가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 이들로서는 가장 쉬운 선택지였다.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그게 언제일 지, 엄마는 자기를 보고 싶어하는지 그게 늘 궁금하지만 이야기할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엄마를 그리워하다가 엄마를 미워하다가 다시 엄마에게 돌아가는 생각을 하는 상상. 엄마를 만나면 엄마를 반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가 금새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마음에는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커져만 간다.
아이가 놀 장난감이 없는 곳에 아이가 먹을 사탕 같은 것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어쩌다 슈퍼에 가거나 일요일 어른 예배에 따라갈 때는 새우깡과 보리차가 전부. 어쩌다 사탕을 먹는다고 해도 어른들이 주는 사탕은 애들 이 썩는다고 주지 않는다. 어쩌다 박하사탕 하나를 아이의 손에 준다. 아이는 박하사탕을 입에 넣다가 몇 번 빨고는 이내 뱉어버린다. 그 이유 때문인지 지희는 커서도 사탕을 잘 먹지 않는다. 다 큰 지희에데 누군가가 사탕을 주면 손을 내저으며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했다.
주일이 되면 고모들과 할아버지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고모들은 지희를 유아부 예배에 데려다주었지만 지희는 고모들이 자기를 놓고 갈까봐 뒤만 보고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다음주에는 지희는 자기를 또 놓고 갈까봐 울기 시작했다. 유아부 선생님은 아이를 지켜보더니 다음주부터는 아이가 불안하지 않게 고모들이랑 같이 예배를 드리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꼬마 아이가 나이든 고모들 옆에 붙어서 가만히 앉아 드리는 어른 예배. 지희로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른들이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고 어른들이 앉으면 앉고 어른들이 눈을 감으면 눈을 감았다. 찬송가를 부르면 같이 부르고 설교를 들을 때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설교 시간에 제일 고역은 새우깡을 먹고 싶은데 참는 것이었다. 그러다 지희가 방법을 터득했다. 새우깡을 이빨로 씹으면 예배 시간에 소리가 날까봐 지희는 하나를 입에 넣고 조용히 입에서 녹였다.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의 설교가 길어지면 세 네 번 새우깡을 입에서 녹여먹으며 예배를 드렸다. 지희로서는 고모들 옆을 떨어지는 것보다는 대예배를 견디는 게 나았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익숙해지고 고모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는 것에 익숙해져서 꽤 오랜 시간 후에는 대예배도 잘 드리게 되었다.
가정예배는 매일 드렸다. 할아버지, 큰고모, 작은 고모 그리고 지희. 저녁 식사를 하고 큰 고모가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할아버지 방으로 모두 모인다. 큰 고모가 예배를 인도하고 찬송가를 부른다. 엄마 아빠가 사용하는 찬송가와는 다르게 작은 고모가 사용하는 찬송가에는 음표가 없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작은 고모는 학교에 다니질 못했다고 한다. 작은고모는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을 읽다가 글씨를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고모가 남편과 사별하고 큰 고모집으로 들어가면서 큰 고모는 집안일에서 해방되고 작은 고모는 살 집을 얻었다고 했다.
매일 매일 하는 예배는 늘 똑같지는 않았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찬송, 그 다음날은 큰 고모 그 다음날은 작은 고모가 좋아하는 찬송, 또 그 다음날은 늘 부르는 찬송.
유치원에도 가지 않은 아주 어린 지희가 글씨를 깨우치게 된 건 매일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고 늘 부르는 찬송가를 보면서였다. 반복되는 후렴구를 따라부르면서 고모가 짚어주는 후렴구 가사를 반복해서 부르다보니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지희도 모르는 사이 어느날부터 찬송가를 보는데 후렴구 가사를 모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찬송 레퍼토리가 지희에게 글씨를 알려준 것이다.
지희가 좋아하는 찬송가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라는 찬송가였다. 가사도 아름다웠지만 곡조가 슬프면서 아름다웠다. 단조풍의 멜로디가 슬픈 마음이 가득한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마음이 슬픈데 아주 슬프지는 않았다.
1년 후 집에 돌아갈 즈음에는 지희는 웬만한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를 모두 알고 있었고 글씨도 다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