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온슬기 Oct 05. 2024

언니들의 방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저는 좋은 시절에나 힘든 시절에나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얀 마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중)




이모는 딸만 넷이었다. 지희는 이모네 집에 놀러가면 사촌언니들의 방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언니들의 방을 관찰하는 것이 초등 학생 지희의 소소한 기쁨이었다. 그 방은 신승훈, 이승환, 들국화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잘생긴 팝스타의 포스터도 있었는데 영어를 아직 읽을 줄을 몰라 누구인지를 잘 알아보지 못했었다.


교복입고 무거운 책가방을 맸지만 언니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를 할 때는 영락없는 지희만한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 언니들의 물건을 만져도 되고 무엇을 만지면 안되는지 초등학교 고학년 셋째 언니는 알고 있었다.


언니의 방을 통해서 지희는 음악이라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니, 취향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피아노학원에서 만나는 음악도 아름다웠지만 언니들 방의 음악 세계는 다른 결로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멋지다는 표현에 더 가까웠다.


언니들의 방에는 신일숙, 이미라, 이은혜의 만화책들이 많이 쌓여있었고 청소년들이 보는 잡지도 있어서 그 잡지를 보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지희가 제일 마음에 들어한 만화는 이은혜의 만화. 만화가 이은혜만화 “점프 트리 에이 플러스”에는 중학생인 여자주인공 혜진이가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과 얼키고 설키는 청춘연애 만화이다. 이 만화에서 중요한 코드가 되는 음악이 언니들이 좋아하는 이오공감의 노래..


이오공감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지희가 듣기에는 약간 어른 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언니 방에서 언니들이 보는 만화를 보고 이오공감의

노래를 들으니 지희가 약간은 어른스러워진 것 같은생각이 든다.


지희는 어느덧 6학년이 되었다. 6학년이 되니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이 편해졌다. 동네 친구들이 아닌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 해리.


지희는 해리가 좋다. 친구 해리는 하얀 얼굴이 동그랗고 얌전한 듯 하지만 잘 웃는 친절한 아이다. 해리는 말을 할 때도 무엇이든지 편하게 해준다. 중학생 언니가 있는 해리를 보며 언니가 있는 아이들은 언니 어깨 너머로 참 많은 것을 배우는구나 생각했다. 지희는 해리를 통해 중학교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학교는 숙제가 많다는 이야기, 여자 중학교이다보니 무서운 언니들이 있다느니, 교복이 어떻다느니.. 해리를 통해 듣는 중학교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희는 자기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지희도 훅 자란 느낌이 든다. 몸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몸이 변해갈수록 마음도 변해가는 것 같다. 지희는 더 조용해져갔다. 특히 집에서는 더욱 말수가 없어졌다. 대신 친구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좋아졌다. 어느날 해리와 이야기하다 라디오 이야기가 나왔다.


“너 라디오 들어? “

“아니. 난 안 들어. 너는 들어? ”

“응. 듣지. 밤 10시부터 들으면 좋은 노래들이 많이 나와. 나는 언니랑 같이 들어. ”

“진짜..? ”


지희는 그날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동생 윤희와 누워있으면 윤희가 자는 틈으로 지희는 엄마가 새로 산 라디오를 머리 맡에 두고 주파수를 맞춘다. 지희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들을 듣는다.


그러다 어느 날, 지희는 밤늦은 시각.

라디오에서 이오공감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흘러나오는 걸 알고 너무 좋아서 눈물을 글썽이다가알게 되었다. 지희의 세상은 시장 바깥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밤, 음악, 그리고 지희 .

지희만의 밤의 세계.

그 조용한 세계가 음악으로 라디오로 채워져간다.



이전 21화 시장에 기대어 사는 이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