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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Oct 02. 2024

시장에 기대어 사는 이웃들

지희의 친구들


예진이네는 딸만 셋인집이었다. 슈퍼집 건너편집.

예진이 엄마는 사람이 좋아 동네 아이들을 잘 건사했고 지희도 예진이와 친하게 지냈다. 예진이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에 비해 키가 크고 얼굴도 까무잡잡하다. 외모가 특출나지는 않지만 늘 서글서글한 얼굴에 사람이 예민하지 않아서 동네 아이들은 예진이네 집 앞에 늘 모여있었다. 예진이와 지희가 어렸을 때 지희는 예진네 집에 자주 놀러갔는데, 지희와 예진이는 방바닥에 엄마 영양 크림을 온 통 발라놓고 스케이트 놀이를 한다면서 온 방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희와 예진이처럼 지희 동생과 예진이 동생도 동갑이고 지희는 예진이가 제일 좋았다. 지희는 예진이와 같은 학교에 가기를 바랬다. 7살 유치원을 졸업하며서 지희는 매일 기도했다.

“제발 예진이하고 같은 학교로 가게 해주세요.”

하지만 예진이는 가까운 학교로 갔고 지희는 저멀리 아파트 촌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었다. 지희는 예진이 다음으로 친한 유정이랑 같은 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예진이랑 같이 학교에 가질 못하는 게 너무 서운했다.


 어느 날은 지희가 예진이네에서 저녁 밥을 먹고 또 어느 날은 예진이가 지희네 집에서 밥을 먹었다. 서로 밥을 먹는 사이라는 것은 허물이 없는 사이. 예진이 아빠도 이 동네 사람같지 않은 순한 남자 중에 하나다.

 

시장에 사는 남자들, 아저씨와 아이들 할 것 없이 거의 거친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먹고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시장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기술도, 이렇다할 기댈 사람들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란 눈치가 빨라야 하고 내 새끼들 건사하려면 강해져야만하기 때문이다. 거친 아버지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도 대부분 거칠기 마련이다. 동네 아이들은 서로 싸우고 건들면서 이 동네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아마도 지희네와 예진이네는 이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기대어서 살아나갔던 것 같다.


학교 입학 후 지희는 한참을 여자 아이들과 노는 데 힘들었다. 친한 친구 유정이와는 같은 반이 되질 않아서 아는 아이 하나 없이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시장과 달랐다. 시장골목동네 아이들은 거의 남자아이들이다보니 지희는 남자아이들과도 놀았는데 학교엘 가보니 학교 여자 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노는 아이들을 이상하게 봤다. 학교 여자아이들은 시장 아이들과 달랐다. 학교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만 놀고 끼워주지 않았다. 시장아이들은 처음 본 아이라도 같이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며 다같이 놀 때는 사람이 많은 걸 좋아하는데 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만 놀았다.  시장아이들은 귓속말을 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귓속말은 쪼잔하거나 배신자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여자아이들은 저희들 끼리만 귓속말을 한다. 그래서 지희가 지내기가 어려웠다.  지희는 예진이가 이사가기 전까지는 힘들지 않았다. 저 윗집 윤진이도 있고, 유정이도 있고. 그래도 지희는 예진이가 좋았지만 예진이네는 지희와 예진이가 아홉살 되던 해에 이사를 갔다.  주로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집을 사거나 가게를 깨끗한 곳에서 내거나 하는 이유로 떠나는 것이 때문이다. 슈퍼집을 지날 때마다 예진이가 살던 집을 보던 지희는 마음이 시렸다.


유정이네도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집은 아니다.

지희는 8시 전에 가서 유정이를 기다린다. 유정이엄마는 지희엄마처럼 일도 안 하는데 잠옷차림으로 늘 누워 있다. 지희는 궁금하다. 엄마들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유정이 엄마를 보면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아침식사가 김치찌개이다. 어제도 오늘도 아마도 내일도 그럴테지만. 신기한 건 유정이는 물릴 만한데도 늘 그 밥을 먹는다. 지희엄마는 매일 반찬을 바꾸는데 희경이 엄마는 늘 똑같다. 유정이 동생 준우는 더 어린데도 유정이엄마는 늘 김치찌개에 밥이다. 그렇지만 유정이엄마는 아이들 옷이랑 책에 신경을 쓴다. 유정이는 예쁜 옷을 입는다. 이 동네 여자아이들이 입지는 않는 예쁜 원피스를 입은 유정이는 착하지만 뭔가 지희랑은 통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다. 생각이 많고 말이 없는 지희는 뭔가 자기랑 통하는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유정이랑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유정이네 집에 잘 놀러간다. 그 이유는 유정이 방에는 디즈니동화전집이 있는데 컬러로 되어있어서였다. 디즈니동화 전집의 신데렐라는 예쁘다. 신데렐라의 아름다운 드레스는 투명감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는데 지희는 그 드레스의 질감을 표현한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지희는 유정이 방에서 꼬마코끼리 덤보, 신데렐라, 백설공주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유정이는 책이 많은 편인데 잘 펴보지를 않는다. 아마 그 책 말고도 장난감도 있고 볼 책이 더 있어서 그런지 잘 보지를 않는다. 준우가 지희를 잘 따르고 잘 놀아서인지 유정이도 지희가 놀러오는 것을 좋아한다.


윤진이네도 시장에 기대어 사는 이웃이다. 세탁소까지 올라가는 윗동네에 사는 윤진이는 나이 차이가 나는 언니들과 오빠가있다. 다 큰 언니가 있어서 그런지 윤진이는 깍쟁이이다. 싸움도 안 지고 말도 잘하는 윤진이. 윤진이는 순한 지희가 좋지만 지희는 윤진이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윤진이랑 놀 때는 윤진이의 말을 잘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윤진이 엄마는 새벽같이 나가서 일하고 밤늦게 들어오는데 동네에서 바지런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윤진이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인지, 언니 오빠들도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윤진이 엄마 아빠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올 때가지 윤진이는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저녁에는 언니가차려준 밥을 먹고 숙제를 한다. 뭐든지 알아서 잘하는 윤진이가 지희는 부럽기도 하지만 뭐든지 명령하듯이 말하는 윤진이가 지희는 어떤 때는 힘들다.


지희가 고학년이 될수록 지희와 마음이 통하는 누군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상상의 친구를 그려보기도 하고 나중에 만날 친구들은 지희와 통하는 것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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