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기를 위로하는 법
책 속에서 나는 다른 세계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속으로 여행했다.
(애너 퀸들런, 작가)
엄마는 집에 위인전을 들여놓았다. 낙서로, 아이들의 장난으로 찢겨나간 아빠 책들의 자리에 위인전이 꽂혔다. 지희는 본격적으로 위인전을 읽기 시작했다. 지희는 책벌레가 되다시피 집에 앉아 책을 본다.엄마는 지희가 심부름도 하고 동생들하고 놀아주었으면 하는데, 지희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대답을 안 할 때가 많다. 엄마의 심부름을 놓칠 때면 큰 소리를 내고 지희는 엄마가 야속하다. 심부름을 하고 나서 다시 지희는 자신만의 세계로 사라진다.
상상속의 세계로. 엄마의 큰 소리도, 섭섭한 저 마음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냉장고 위의 자신만의 상상의 공간으로..
‘저 위에 나만의 이불을 놓아야지. 책상도 놓아야지. 책상 위에 좋아하는 책도 올리고 예쁜 조명도 올려야지. 사각사각 연필도 깍아 놓고 글을 써야지. 엄마가 아무리 불러도 내려오지 않아야지..‘
상상 속 세상에 있으면 마음이 좋다. 그러다 다시 책속으로 빠져든다.
신사임당의 전기를 읽는다. 아이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책벌레였던 나중에 호를 사임당으로 짓는 소녀의 세계로. 지희처럼 조용하지만 그림 그리기도 좋아해서 마당에 지나가는 곤충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세계.
케네디 위인전에서는 미국식 가정교육을 엿보고 헬렌켈러의 이야기를 읽으며 장애를 극복한 그녀의 용기에 감탄하고, 마리아 앤더슨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종차별을 겪는 아이의 삶에 같이 아파했다.
마리 퀴리부인의 전기를 읽으며 지희는 어린시절 마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는다. 폐병으로 아이들을 안아주지 못했던 엄마를 늘 그리워하던 마리. 마리는 결국 엄마를 병으로 잃고 큰 슬픔을 겪는다. 마리의 깊은 슬픔이 지희에게까지 전해졌다. 지희는 엄마와 어릴 적 동생들이 연달아 태어나면서 꽤 오랜기간동안 지희를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맡아준 적이 있다. 지희는 엄마와의 분리를 겪었던 '마리'의 모습을 그리며 지희는 자신의 상황을 대입하면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위로한다.
'마리아 스플로도프스카, 러시아어로 주기도문을 외워.'
러시아 군인들이 폴란드 학교에 들어와서 마리에게 러시아어로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고 책상을 검열하고 무얼 배우는지 검사하는 장면에서 지희는 고모를 떠올린다. 장교 출신의 엄한 고모는 늘 지희네 집에 와서 키를 재고 무얼 배우는지를 묻고 지희나 동생들이 잘못을 하면 부모보다도 더 모질게 혼을 낼 때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늘 고모가 오면 주눅 들어있던 지희와 남매들은 고모가 집으로 가고 나면 뭔가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에게 묻지 않기를 바라지만 늘 러시아군인들 앞에서 강제로 외워야했던 마리의 반복되었던 일상이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여겨졌다. 지희는 마리의 선생님과 마리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로 안아주는 장면을 늘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위로했다.
지희만의 상상의 공간에서 지희는 위인전 속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손에 손을 잡고 언제까지나 뛰어다닌다. 겉으로 볼 때는 조용하지만 그 곳 세상을 채우는 다양한 소리들이 비집고 나올까봐 지희는 더 깊이 책 속으로 들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