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olalee Dec 24. 2021

마음이 동한다는 것

길을 걷다 마주한 붕어빵 냄새가 겨울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려준다. 

거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겨울 냄새와 설렘으로 가득한 형형색색의 트리들이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12월의 설렘은 앗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더 행복하고 반짝이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커지게 만들었다. 평일 오전이면 신랑은 출근을 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간다. 그 잠깐인 오전 시간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까 고민하다 ‘리스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 예약을 했다. 무려 더현대 서울 6층에 위치한 통유리창의 예쁜 공간에서 하게 될 클래스를!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던 클래스 3일 전, 더현대 서울 1층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쫄보인 나는 클래스를 취소하게 되었다. 급하게 다른 클래스들을 찾아보았으나 리스 만들기 1시간에 9만 원~12만 원 사이로 더현대 문화센터보다 3~4배가 비쌌다. 

‘아니 도대체 리스 재료들이 얼마길래 이렇게 비싼 거야?! ‘

나는 클래스 신청을 포기하고 직접 그 재료들을 사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 검색 결과 꽃시장에 가서 사면 다양한 리스 재료들을 정말 싼 값에 살 수 있었지만 가는 길이 멀어 생화를 전문으로 파는 곳에서 인터넷 주문을 하기로 했다. 다양한 재료가 있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재료로 충분했다.

먼저 리스틀을 지름 30cm로 4개 주문하고 솔방울과 부드러운 측백 가지 그리고 볼륨감이 좋은 향나무 가지와 빨간 열매가 달린 가지 한 묶음을 주문했다. 총 7만 원 정도가 들었는데 리스 4개가 충분히 만들어지는 양이었다.

주변에 고마운 마음을 리스로 전하기 위해 넉넉하게 재료를 주문했는데 만들어서 선물하기보다는 함께 만들면 더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가 도착하고 나서 그동안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언니 두 명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10시부터 12시 딱 두 시간 동안 리스를 만들어야 했다.

언니들이 오기 전 부랴부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작업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커다란 책상에 리넨 천을 깔고 그 위에 측백 가지와 향나무 그리고 솔방울과 빨간 열매를 늘어놓았다. 생화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작업방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는데 예쁜 유리잔에 담긴 커피와 하얀 도자기 접시에 담긴 딸기가 설렘을 더했다.

아이 둘을 키우느라 힐링할 시간이 없는 언니들을 초대해 잠깐이지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도 그 시간 동안 즐거움이 쌓여 오늘을 버틸 힘이 생길 테니 일석이조 아닐까.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리스는 생김새가 무척 달랐다. 내 리스는 너무 자유분방해서 회오리가 치는듯한 모습이었고 언니 A의 리스는  아주 깔끔하게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이었다. 언니 B의 리스는 나뭇가지를 짧게 잘라서 꽃아 귀여운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고마워’’고마워’를 연신 이야기하며 언니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언니 B는 자신이 이런 걸 잘할 줄 몰랐다며 너무 즐기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이렇게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지 않겠다고. 금방 첫째 하원 시간이 다가와서 언니들은 2시간 정도 머물다 갔지만 그 웃음과 향기는 작업방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가만히 앉아 리스를 보고 있는데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엄마는 주변 이모들에게 ‘퍼주는’ 걸 좋아했다. 특히나 요리를 해서 함께 먹는 걸 좋아했는데 어린 나이에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요리를 하는 것도 주변을 청소하는 것도 너무나 큰 일인데 이렇게 자주 사람들을 집으로 부른다고? 하루는 6명의 동네 이모들을 불러 칼국수를 해 먹는데 그 많은 양의 칼국수를 저렇게나 맛있게 끓여내다니. 먹는 내내 하하호호 웃음소리와 이모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쌓여가는 그릇들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설거지를 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20년이 지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바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데 동네 언니들(애기 엄마)과 갖는 잠깐의 티타임 시간이 복잡한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주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서로 마음이 동해 지는 건 정말 큰 위로가 된다. 

쌓여있는 컵들과 쓰고 남은 나뭇가지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남아있는 웃음과 향기가 좋을 뿐이다.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정말 감동적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 조각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