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나 Sep 08. 2020

나는 나의 편이 되겠습니다

왜 항상 다른 사람들 편만 들어요?






한동안 명상을 배우러 다녔다. 작은 일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들을 곱씹는 습관도 고치고 싶었다.


명상을 하면, 수시로 머릿속에 떠다니는 걱정거리들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생각을 비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배운 명상은 오히려 생각들을 꺼내서 살펴보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모든 일들을 감정, 생각, 신체적 반응의 형태로 경험하고, 과거의 일이 반추적으로 생각나는건 잘 이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솥뚜껑 보고 놀라듯 현재에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과거에 말로 크게 상처를 입은 일이 계속 떠오른다면, 명상 속에서 천천히 그때의 내 모습을 관찰하며 생각, 감정, 신체적 감각을 경험해봐야 한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내 생각의 흐름, 몸의 반응, 감정 등을 완전히 느끼고 나면 그 경험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있을 때 조금 더 나를 지키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나는 명상을 하면서, 내가 생각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크게 당황했을 때에도 이 순간 어떤 말을 해야 이 상황이 잘 해결되지? 라는 생각에 집중한 나머지 감정은 저 뒤로 밀어버리고, 신체적 감각은 아예 느껴지지도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몰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내 마음과 기분에는 무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이 던진 말에 마음이 다쳐 서운해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진 채 서있던 나의 모습은 명상을 한 이후에야 볼 수 있었다.


"너는 그 상황에서도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겸손함과 양보를 미덕으로 알고 자라서인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고, 상대방의 좋은 면을 먼저 보려고 하는 성향 때문에 대인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얽히거나 가까운 관계로 묶이는 일이 많아졌고, 그동안 나의 장점이라고 여겼던 “겸손과 배려의 미덕”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이 다치는 일이 있어도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 건데. 오늘 많이 더웠는데 조금만 더 신경 써줄걸, 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존중하고 나를 돌아보는 것이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그 이유가 상대방의 불성실함 때문이었을지라도,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분이 언짢은 순간에도 상대방의 기분이 안 좋아질 것을 생각해 표현을 하지 않았다.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또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결국 "내가 예민했나 보다"라는 결론만 남았다. 가장 중요한 나의 마음을 돌보는 건 늘 뒷전이었다.


명상을 할수록 나에 대한 의리와 전우애 같은 감정이 생겨났다. 나의 감정과 생각, 감각까지 모두 들여다보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연습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우리가 하는 생각 중 많은 부분은 자동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은 반사적으로 자신이 했을지도 모르는 잘못을 먼저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내가 부족했어", "난 왜 이러지?"라는 생각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가장 먼저 지키기로 했다.


한동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져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 돌아보고,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나의 미성숙함을 탓했다. 그때, 모든 관계는 상호 작용이라는 말이 큰 힘이 되었다. 설령 내 행동이 잘못된 결과로 이어졌다고 해도 100% 나의 과실이라고만 볼 수 없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는 그동안 서로 주고받은 말과 행동이 축적되며 이어져온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다면,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였다고 스스로를 믿어주기로 했다. 3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실수를 했다면 다음에는 더 잘하면 된다고. 어떤 순간에도 나의 마음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기로, 지금보다 훨씬 더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기로 한다.

 

나를 가장 정성 들여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