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경 Feb 11. 2024

편지를 쓰지 못하는 사람

편지로 인해 겪은 실망과 사랑

꽤 오랫동안 편지라는 형식의 글을 쓰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들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도, 심지어 아빠에게 매우 오랜만에 사랑이 담긴 편지를 받았을 때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선물을 주거나, 우리 집에 초대해 음식을 해주는 등의 나름의 사랑 표현은 자주 나누는 편인데, 편지를 쓰는 건 무언가 내키지 않았다.


1년 전이었던가, 남편에게 사과를 할 일이 생겨서 친구들에게 상담을 했는데 친구들은 '편지를 써보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스스로 나를 '편지 못쓰는 사람'으로 정해뒀기 때문이었다.




독자가 단 한 명인 글쓰기라니


왜일까 편지라는 형식의 글쓰기는 도저히 못쓰겠다.


일단 독자가 단 한 명이라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큰 부담이었다. 독자가 불특정 다수라면 '누군가는 내 글을 마음에 들어 할 테고, 누군가는 싫어할 테지'라고 생각하면 됐다. 그런데 독자가 단 한 명으로 정해진 글쓰기라니, 그 독자 한 명을 만족시키기 위한 글쓰기는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편지글은 대부분 매우 감성적이다. 나는 감성적인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감성적인 글을 내가 읽는 것도 힘든데,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보내는 것이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직업이 기사 쓰는 사람이니, 감성적인 글에 대한 거부가 심한 것도 한 몫하지 않나 싶었다.


명절에도 편지를 쓰기보다, 편지봉투에 돈을 넣는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철학자의 편지, 글쓰기 선생님의 편지


이렇게 편지에 대해 생각해 본 계기는 최근 인상적인 편지글 두 가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책 우애령 작가의 옛 글을 그 딸 엄유진의 그림과 함께 개정해 펴낸 책 '행복한 철학자'에 나오는 마지막 편지글이다. 이 책은 인스타툰을 그리는 딸의 그림이 너무나 유명해지자, 그 가족 이야기를 썼던 어머니의 옛 책(이 책 역시 꽤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이 다시 리부트 된 사례이다. 참으로 멋진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이 책의 그림, 정확히 말하면 딸의 그림엔 매우 관심이 있었으나 어머니의 글투에는 적응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이 글에는 농담이 너무 많아서 조금 피로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농담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내 기본 상식을 총동원해서 이해해야 했다..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오히려 아버지가 딸에게 보낸 편지 글이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목적은 분명하다. 엄마나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좀 욕심을 부리자면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어떤 의미로는 한 인간이 영생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횡설수설해 보았다. 모쪼록 늘 즐겁고 의미 있게 지내기 바란다.
책 행복한 철학자 가운데 '철학자의 편지' 272p


이러한 느낌의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이토록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족 안에서 태어난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 역시 아빠에게 이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답장을 못한 죄스러움도 있었다. 남의 떡(가족의 사랑)만 커 보이는 나의 못된 심보 때문에 복잡한 심정에 흐르는 눈물이었다.


책 행복한 철학자. 펀자이씨툰의 엄유진 작가가 그림을 그려 개정판으로 나왔다. 수준 높은(?) 가족들의 일상적 대화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책.



두 번째는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에서 이슬아 글쓰기 선생님이 글방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이었다. 어린이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줄 수 있는 어른이란 참 멋진 거구나 생각했다.


너의 주저함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주저하고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있잖아. 열심히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 너의 글쓰기는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해 왔는데, 그것도 알고 있니?(...) 너는 너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천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책 부지런한 사랑 가운데 '여수 아이들에게 쓴 편지'


이토록 편지글들이 보내는 사랑 표현은 나에게 너무나 적나라하다.


이런 적나라한 표현을 어떻게 단 한 명의 독자만을 상정해 보낼 수 있는지 나로서는 낼 수 없는 용기인 것 같다.


글쓰기 선생님으로 활동했던 이야기를 담은 이슬아 작가의 책 ‘부지런한 사랑’. 아이들과 이렇게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어른이란 참 멋지다.




편지로 인해 상처받았던 기억들


왜 나는 이렇게까지 편지라는 형식을 어려워하는지 생각해 봤다.


유일한 독자가 내 글을 '감정에 취했다'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누군가 사랑하는 나'에 취한 내 글을, 그 상대에게 보이기란 너무나 수치스러운 느낌이다.


그 상대는 나처럼 감성에 취해있지 않은 시간에 그 편지글을 볼 텐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나의 이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때였던가,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어버이날이어서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내 감정을 글로 쓰고, 마지막에 -엄마의 사랑하는 막내딸이-라고 적었다.


엄마는 그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고마워~ 그런데 우리 집엔 딸이 하나니깐 막내딸이 아니라 딸이라고 쓰면 돼'라고 말했다.


우리 집 자식 구성은 1남1녀로 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다. 굳이 따지자면 '엄마의 사랑하는 딸' 혹은 '막내'로만 써도 됐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에게 그러한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34살인 지금도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편지를 쓰고 지적을 받았다는 기억만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편지를 쓰고 지적받은 최초의 기억이라지만 이 일 이후로도 편지는 많이 썼었다. 중고등학교 때 정말 많은 친구들에게, 정말 많은 편지를 썼었다.


나에게 또 다른, 편지가 준 상처의 기억이 있다.


20대 때 꽤 오래 만났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고 종종 나에게 편지를 했다. 그 편지를 읽는 것은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와 만난 지 몇 년이 지났고 스스로도 우리 사이가 권태기라고 생각했던 즈음 내 생일이어서 그가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편지는 '글을 잘 쓰는 남자'가 썼던 편지가 아니었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 그 편지는 마치 굉장히 편지를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쓴 것 같은 글들이 펼쳐져 있었다. 안 그래도 우리 사이 권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편지가 결정타를 날렸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 가 우리는 헤어졌다.




동은이의 편지를 기억하시나요


이러한 편지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나는 꽤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다.


최근 읽은 좋은 편지글을 보고도 나는 편지란 좋은 글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편지를 쓸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긴 했다


사실 편지로 인해 안 좋은 기억들도 있지만, 편지로 인해 좋은 기억들도 있는데 참 옹졸한 인간이다.


아빠가 종종 이메일로 써준 편지글이나, 내가 전혀 친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에게 써준 편지들 역시 감동을 줬는데..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수능 전 써준 손 편지 역시 지금까지 간직하고, 어쩌면 날 그렇게 꿰뚫어 봤는지 역시 교사는 교사이구나라고 생각한 좋은 기억도 있는데…


왜 나는 편지로 인해 상처받은 기억들만 붙들고 사는지 조금 한심해졌다.


작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더 글로리'의 장면이 생각난다.


더 글로리의 동은이.

동은이의 복수가 끝나고 동은이가 살았던 에덴빌라에서 그 집주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오는 장면이다.


“한 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뭐가 됐든 누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18번의 봄이 지나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이 있었다는 걸. 친구도 날씨도 신의 개입도요.”


자신에게 매정하고 죽일 만큼 미워할 사람이 있었던 만큼 죽음에서 구해준 사람도 있었다는 걸 깨달은 어른 동은을 비추면서 드라마는 마지막을 향해간다.


멋진 편지글들을 마주한 덕분에 나 역시 편지로 인해 상처받았던 기억만큼, 감동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력은 싸가지와 반비례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