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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un 07. 2024

어차피 낳을 거면 빨리 낳아라?

빨리 낳으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

많은 이들이 '어차피 아이를 낳을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낳아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보통 나름의 '꼰대스러움'을 피하는 맥락에서 자주 나온다. 


"결혼은 꼭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기를 낳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해라"라는 식이다. 이런 주장은 "빨리 결혼해야지", "아기는 낳아야지" 같은 말들이 꼰대 취급받는 세상에서 한 단계 정도는 꼰대스러움을 상쇄할 수 있는 주장이다.


아기를 낳지 않으려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 "빨리 결혼해야지"라는 말보다는 덜 꼰대(?)스러운 말이지만, 바꿔 말하면 "아기는 무조건 빨리 낳는 것이 좋다" 주장이기에 완전히 꼰대스럽지 않은 말은 아니다. 


(꼰대 소리를 내뱉었으니 꼰대에 대해 덧붙여보자면, 나는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손웅정 책 리뷰에도 썼지만 세상에 '진짜 꼰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디어에 드러나는 MZ스러움 보다는 꼰대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주변사람이 나에게 솔직한 조언을 원한다면, 나는 결혼도 하라고 하고 아기도 낳으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누가 이런 의견을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준비된 20대가 얼마나 있을까


당연히 준비가 됐다면 아기를 빨리 낳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 '준비'라는 것이 20대 때 하기가 어려운 게 문제다. 물론 나 역시 완벽하게 준비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20대 후반보다는 30대 초반이 더 많은 것이 준비된 상태였다. 


우선 "하루라도 아기를 빨리 낳는 게 좋다"라고 주장하는 주된 주장을 살펴보면, 산모의 나이가 어렸을 때 아기를 낳는 것이 산모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기를 낳으면 산후 체력 회복도 좋다고 하고 이 체력은 육아를 할 때 계속 필요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과학적으로 35세 이상 아기를 낳으면 '노산'으로 분류되니, (실제로 35세 이상 임신부가 되면 노산으로 분류되어 검사도 더 많이 받는다) 20대 때 낳으면 좋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틀린 말이기 어렵긴 하다. 


과학적으로 35세 이상은 노산이 아니라고, 그 나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과학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니 노산 이야기는 맞다고 넘어가고, 체력이야기만 해보겠다. 


생각해 보면 젊다고 해서 무조건 체력이 좋고 회복이 빠른 것은 아닌 같다. 


경우 30대 중반이지만 골골거렸던 20대보다 훨씬 체력이 좋은 같다. 20대 때는 건강하게 먹는 법도 모르고 잠도 새벽 2~3시는 되어야 잤으니 회사만 다녔어도 집에 와서는 누워있기에 바빴다. 그런데 30대 들어서서는 건강 관리에 눈을 떠서 잠도 10시 이전에 자고, 야식도 거의 안 하며, 술도 먹어봤자 한두 잔 먹고 PT나 요가, 마사지 등으로 건강관리도 가능했다. 사실 PT나 운동 다니기, 마사지 받기 등등도 재정이 쪼달리는 20대에 하기는 힘든 일이다. 


물론 절대적인 체력은 20대를 못 따라가는 게 맞고, 20대부터 건강관리를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30대 초중반 정도도 나쁘진 않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건강은 절대적인 체력 자체도 중요하지만, 관리가 중요하고, 건강을 관리할 줄 아는 멘탈도 중요한데 그걸 20대에 갖추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타개해 가는 멘탈은 육아를 할 때 매우 중요한데 이런 단단한 멘탈을 아주 빠른 시기에 장착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아기 계획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껴본 후 


나는 20대 후반 취업을 했는데 이 때를 생각해보면 일은 오지게도 못했지만, 일에 굉장히 몰두해 있을 때이다. ㅎㅎ 아기로 인해 나의 경력이 단절된다는 것은 무척 화가 나고 억울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비혼이나 딩크 이야기에 몰두했다. 


그러나 일을 한 지 6~7년이 지나고 30대 초중반이 됐을 때, 오히려 나는 "일을 하느라 내가 아기를 안 낳는다고?"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 때문에 사적인 나를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억울해진 것이다. 일 때문에 저녁 약속을 포기하는 것도 엄청나게 화가나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일에 푹 빠져보고, 그 일에 회의감도 느껴보는 시기가 지난 후에 아기 계획을 짠 것이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여성의 경우, 아기 낳기나 육아는 경력 단절 위기를 불러오는 인생의 큰 이벤트이다. 


그래서 일에 대해 충분히 안정되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느낀 후 아기 계획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빨리 낳으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


체력 이야기, 일 이야기해 봤고 남은 건 재정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나는 결혼한 후 운 좋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서 집과 관련해 큰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집을 갖기 전 "무조건 아기는 빨리 낳는 게 좋다"는 말을 듣고 아기를 빨리 가졌다면, 지금처럼 안정감 있게 정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싶긴 하다. 누군가는 뭐 집 한 채 가지고 대단한 유세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쫄보인 나는 집 한 채가 준 안정감을 무시하기 힘들다. 


결론을 이야기해 보자면, 체력은 30대에도 관리하기 나름이고, 일이나 재정 등 아기를 키우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어려움들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안정된 후 아기를 낳는 게 좋다는 말이다. 재정 안정은 30대 초중반에도 어려운 일이기에 멘탈이라도 안정된 상태여야 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는 없다"라고 일침 하겠지만 내 경우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너무나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멘탈적으로도, 일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성장했다. 


내 경우, 준비 안된 채 아기를 '빨리' 낳는 것보다 어느 정도 내 일도 안정되고, 내 재정도 안정돼 있으며, 내 건강도 잘 관리할 멘털을 가진 30대에 아기를 낳았던 것이 행복을 느끼며 육아를 하는 원천이었다.


내가 "아기 낳을 거면 무조건 빨리 낳아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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