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2', 공존의 두 가지 조건

“세상은 절대 당신 혼자서 책임질 수 없다”

by 정민경

※ 이 글은 ‘주토피아2’의 강한 스포일러와 주요 대사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은 읽지 마시길. 이 글은 미디어오늘의 기사로 먼저 나간 바 있으나, 브런치에 발행하는 글은 이미 발행된 기사에 군데군데 사견을 더했습니다.


영화 산업의 극심한 위기 속에 디즈니의 ‘주토피아2’가 19일 기준 571만 누적 관객수를 기록했다. 최근 디즈니의 작품들이 부진하다 생각하던 도중 꽤 반가운 소식이다.


‘주토피아1’에 이어 ‘주토피아2’의 흥행 동력은 명확해 보인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를 통해 사회의 다층적 구조를 시각화하고 그 귀여운 외양 아래 강자와 약자, 승자독식의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배치했다. 군데군데 들어간 유머 역시 즐길 거리이며 이미 팬층이 두터운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움은 기본이다. 디즈니 특유의 대중적 배경 음악 역시 흥행 요소다.


전편 ‘주토피아1’은 다양성이라는 동시대적 화두를 다루었으나 그 해석의 스펙트럼이 예상보다 넓어 논쟁을 낳기도 했다. 당시 한국 사회가 워낙 페미니즘 등 이슈로 뜨거웠던 때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주토피아2’는 포유류와 파충류라는 강자와 약자 구도를 통해 지배 집단과 소수자의 관계를 쉽게 보여주고 전편보다 선명한 공존에 대한 메시지가 느껴졌다.


common (1).jpg 개인적으로는 윈드댄서 시장의 '아니히힝!!!'이 기억에서 떠나질 않는다.....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주토피아2’는 토끼라는 종으로서 차별을 극복하고 경찰이 된 주디와, 길거리 사기꾼 출신 여우 닉이 정식 파트너가 된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조직 내 비주류로 남아있는 이들은 주토피아의 은폐된 도시 기원과 마주한다.


주토피아는 파충류 뱀 가문 ‘더 스네이크’가 건설했으나, 현 지배 세력인 포유류 고양이 ‘링슬리’ 가문이 특허권을 찬탈했다는 세계관이다. 링슬리 가문은 오랜 시간 여론을 통해 파충류를 추방했고, 이들은 은신처에서 주변화된 삶을 살아왔다.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전하는 설치류 니블스가 팟캐스터(유튜버)로 나오는 것도 인상 깊은 점이다.


주토피아 100주년을 맞아 링슬리 가문이 영토 확장을 위해 파충류의 마지막 거주지마저 소멸시키려 하자, ‘게리 더 스네이크’는 주디와 닉의 협력 아래 진실을 복원하려 한다.


주토피아 22.jpg 주토피아2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가 제시하는 공존의 첫 번째 조건은 모든 주체가 내포한 양가감정을 인정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양가감정이라 이야기했지만 내면의 사적이익이나 다양한 감정들을 말한다. 양가감정이라는 단어를 좀 좋아하는데 양가감정에 대한 저의 다른 글을 읽어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로.)

https://brunch.co.kr/@after6min/212

사랑엔 양가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

시장 임명권까지 가지고 있는 링슬리 가문의 파충류 혐오는 백 년 동안 사회 전반에 내면화되었다. 심지어 경찰인 닉조차 파충류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혐오의 기저에는 역설적이게도 선망이 자리했다. 주토피아를 실제로 건설한 것은 파충류였고, 링슬리 가문은 그 공로를 찬탈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가문 내 소외된 인물 ‘포버트 링슬리’의 서사는 이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엔 아군으로 보였으나 적대자로 밝혀진 그는, 가문으로부터 배척당하면서도 결국 그 일원이 되길 갈망하는 모순적 욕망을 품고 있다. “넌 네 가족과 다르게 살 수 있어”라는 설득에도 “다르기 싫어”라고 답하는 그의 선택은, 소속의 욕망과 소외의 고통이 공존하는 복잡한 내면을 드러낸다.

(물론 누군가는 포버트가 애초에 배신을 위해 작전을 짠 것이라면 양가감정이 아니라 단순한 '소속에의 욕망'만을 가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내 경우 그의 모든 순간이 다 거짓인 것은 아닐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주토피아.jpg 영화 '주토피아2'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가 전달하는 두 번째 통찰은 ‘가장 개별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명제다. 주토피아의 복합적 이해관계는 주디와 닉의 관계에도 투영된다. ‘토끼 영웅 콤플렉스’로 인한 주디의 과잉된 영웅 심리, 무리 동물이 아닌 닉의 소속감에 대한 절박함. 자신의 사적이고 내밀한 동기를 인정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대화는 갈등만을 증폭시킨다. (물론 이런 대화를 아무 나하고 할 필요는 없다. 가장 소중한 파트너와는 이런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외부에서 “너희가 뭘 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냉소가 들려올 때, 두 주인공은 결국 각자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선택으로 유토피아에 다가선다. 닉은 주디의 무모한 열정에 등을 돌렸지만, 결정적 순간 자신 역시 주디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음을 자각한다.


“우리가 달라도 상관없어. 내가 상관하는 건 결국 너야”라는 닉의 대사는, 의견의 일치가 공존의 전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한다. 주디가 ‘진실 규명’의 의미를 의심받을 때, “이 일은 게리에겐 중요하다”는 단 하나의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한다.


‘주토피아2’는 “세상은 절대 당신 혼자서 책임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차별의 기저에는 혐오와 선망이 뒤섞여있으며, 이러한 뒤섞인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관계의 실마리를 얻을 대화는 불가능하다. 또한 진실과 입장이 혼란스러울 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개별적 관계 속 사랑과 책임이라는 것.


영화는 거대 담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타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모아져야 함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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