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 속 선전한 글로벌 순위의 이유는
※ 이 글은 미디어오늘의 기사 <넷플릭스 ‘대홍수’, 국내선 “속았다” 세계에선 ‘대박’>로 먼저 발행한 기사에, 기사에는 담지 못한 개인의 의견과 평가를 덧붙여 완성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와 주요 대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발간한 기사에서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를 <넷플릭스 ‘대홍수’, 국내선 “속았다” 세계에선 ‘대박’>라는 제목으로, “국내 호불호와 글로벌 성공,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시대”라는 평론가의 평을 토대로 다뤄봤다. (기사 링크는 가장 아래쪽에 달아놨습니다.)
지난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가 국내의 거센 혹평 속에서도 글로벌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지난 24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대홍수’는 공개 3일 만에 279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으며 대한민국, 스페인, 브라질, 카타르, 태국을 포함한 총 54개 국가에서 시청 1위에 올랐다. 또한 93개 국가에서 TOP10 리스트에 오르며 전 세계적 관심을 끌어냈다.
사실 2790만 시청수라고 하면 감이 안 올 수 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나이브스 아웃>의 새시리즈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의 경우, 공개 이후 24일 기준 2090만 시청 수를 기록했고 이것이 영화(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 기록과 비교해보면 시청 수라는 기준에서도 좋은 성적임을 알 수 있다.
기사를 썼을 당시에만 해도 "그냥 알고리즘 탓", "곧 순위 떨어질걸?"이라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그러나 나이브스 아웃의 기록과 함께 비교해 보고, 28일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을 살펴보면 '대홍수'의 기록은 여전히 좋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대홍수’는 27일 기준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순위 1위를 기록했고 공개 이후 8일 연속 글로벌 1위를 유지 중이다.
‘대홍수’를 둘러싼 국내 반응은 혹평 일색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재난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전혀 다른 영화였다”, “장르적 쾌감이 없다”, “개연성이 전혀 없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외국에서 기록이 좋다는 말에도 “외국도 혹평이다”는 이야기로 반박될 정도다. 물론 한국영화에 쏟아졌던 기대만큼의 작품성은 아닐 수 있다.
혹평의 핵심은, 재난 영화의 공식적인 전개와 클라이맥스를 기대한 관객들이 중반 이후 SF적 설정과 ‘모성애’를 중심으로 한 감성적인 서사로 전환되는 구조에 혼란을 느꼈다는 것이다. SF적 설정 역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역시 수많은 SF 영화를 뒤섞어놨다는 평을 들은 작품이지만) 나왔던, 주인공의 티셔츠에 숫자가 달라지면서 타임워프를 반복하는 식의 곳곳의 클리셰로 인해 새롭지 않다는 평가다.
혹평의 강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다. 허지웅 작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배달 플랫폼 리뷰를 보는 느낌”이라며 감정적으로 과열된 평가 양상을 지적했고, 영화번역가 황석희 역시 “몇 년 전부터 느끼는데 관객들 평이 점점 짜다. 그리고 평의 염도에 비례해 표현이 과격해진다”며 “내가 신뢰하는 주변인들 평을 보자면 대단한 수작은 아니어도 평작 수준. 감탄할 건 아니지만 재밌게 볼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라 평가했다.
기사에서는 정덕현 평론가를 인용해 “작품의 국내 ‘호불호’와 글로벌적 성공이 연관성이 있던 시대는 지났다”라며 “국내에서 천만 영화가 여러 편 나오고, 각자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모두 비슷한 영화를 봤던 시대와는 다르다”라고 썼다. 정 평론가 역시 ‘대홍수’에 쏟아진 혹평의 배경을 ‘기대의 불일치’에서 찾으면서 “그 정도 혹평을 할 작품은 아니다”라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정확한 멘트를 보기 원한다면 하단의 기사 링크로.)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나의 평가는 무엇이냐.
SF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진 않지만(피까지 문과...), 중반부부터는 SF 설정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여기에 '개연성'을 운운하는 것은 알맞은 잣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혹평의 정도가 심해 오히려 이 요소가 시청을 견인했다는 것도 내 생각이다. 나 역시 시청자들의 혹평이 궁금증을 자극해 시청으로 이어졌기에.
다만 혹평에 비해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라고 판단한 지점은 모성애를 이모션엔진의 핵심으로 다루는 부분이었다. 누군가는 이 시대에 무슨 모성애 이야기야, 구리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홍수'가 말하는 모성애는 '모성애 강요'와는 다르다.
‘대홍수’가 보여주는 모성애는, 아이를 낳은 엄마의 모성애를 단순하게 그리기보다, 연구원으로서 아기를 ‘만들어 낸’ 주인공 구안나(김다미)가 느끼는 복합적인 모성애를 보여준다.
그 감정은 매일매일 시끄럽고 정신없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다가도, 이내 죄책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이제 아이를 회수해도 될 거 같다”라고 연구원으로서 말하다가도, 결국은 그 아이를 위해 목숨을 수천 번, 수만 번 바치는 복합적인 것이다.
난 오히려 이 감정이 지금까지 '환상적으로만 다뤄져왔던 모성애'가 아니라 실제 모성애와 매우 가깝다고 생각됐다.
나 역시 2년 정도의 난임기간을 가지고 시험관으로 아기를 출산한 경험이 있기에, 주인공 정도로 아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공감이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 아기를 어느정도는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임신 전 수많은 실패와 한번의 유산도 있었기에 그렇다.)
또한 많은 이들은 주인공의 아기인 '신자인'이 발암 캐릭터이고 금쪽이가 아니냐고 하는데, 육아해보신 분들은 다 알 거다. 저 정도면 보통의 아이란 것을.........
또한 구안나(김다미)의 초반 몇몇 장면들을 통해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 결국 모성애를 가지게 된다 라는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평도 보았는데, 사실 나는 오히려 구안나의 일상이 엄마들의 일상이 아닌가 싶다. 아이의 부름을 자주 외면하고, 아이가 그린 그림에 건성으로 반응하는 등. 그러한 엄마의 모습이 오히려 이전에 비친 엄마들의 모습보다 몰입이 되었다고나 할까.
최근 육아 밈 중에 "아이에게 한번 화를 참기는 너무 어렵지만, 아이를 위해 목숨은 바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 말에 어울리는 전개들이었다.
실제로 감독 인터뷰를 보면 감독이 누나의 육아를 보면서 참고를 많이 했다고 한다. 영화 내내 '어 이 감독 육아 좀 해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육아의 모습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극 중 전개에서는 구안나가 '아이를 실제로 낳은 엄마'가 아니라는 설정 이긴 하지만, 아이를 실제로 낳은 엄마들의 모성애도 사실 갑자기 뿅!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 구안나처럼 육아를 하면서 점점 생겨나는 부분도 크기에. 엄마들이라면 많이 공감 갈 것이다.
또한 ‘타임워프’를 반복하면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전개, 그 전개에서 인류애를 잃지 말자는 메시지도 건질 수 있다.
구안나가 초반에는 외면했던 다른 층에 사는 아이를 엘리베이터에서 구하는 장면, 아이를 낳고 있는 임산부를 구하는 장면 등은 ‘왜 급박한 와중에 자신의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구할까?’라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후 구안나가 펼친 인류애가 결국 자신의 아이를 구하는 단서와 도움들로 채워지는 장면에서 의문은 설득으로 바뀌기도 한다.
초반에는 아파트 이곳저곳 울리는 비명을 구안나가 그저 지나가지만, 여러 번 타임워프를 한 뒤에는 비명 소리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것이 곧 자신의 아이를 구하는 길임을 깨닫기 때문이고, 자신의 아이를 살리는 것이 곧 자신을 살리는 길이기에.
물론 나 역시 몇 번 화면을 이탈할 뻔한 위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 할 말이 있는 영화라면 적어도 나에게는 아주 혹평을 해야 할 만한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