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편들...
자꾸 욕심이 난다. 나의 기억 속에 모든 것들을 다 붙잡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자꾸 난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 속에서 불현듯 갑자기 떠오르는 단말마의 기억의 조각들이 또다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움켜쥐듯 글을 쓰게 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모든 삶들이 단지 몇백 몇천의 단어들로 설명이 될까마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된 나는 내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가슴속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 시간은 오전 1시 59분 적막한 어둠이 깔려있는 거실 소파에 누워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깜깜한 어둠이 걷히고 찬란한 아침이 오면 나는 또다시 평범한 일상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한 평범함이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국민학교 3~4힉년 때였을까 수업도중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다. 집으로 빨리 가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 말씀대로 책가방을 싸고 집으로 향했다. 집과 학교 까지는 30분 정도 거리였다. 산중턱에 자리한 학교에서 교문까지 책가방을 메고 걸어 나오면서도 학교 공부를 다하지 않고 중간에 나온 것이 그저 좋을 뿐이었다.
신나게 신발주머니를 흔들고 집에 도착하니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사시는 둘째 고모네도 와 계셨다. 그중 어머니는 나를 발견하고는 와락 끌어안으시며 통곡을 하였다. 아버지가 시장어귀 횡단보도에서 버스에 치여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나는 어려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된 사실은 대략 이러했다. 둘째 작은아버지가 사업을 핑계로 4 가족이 모여사는 우리 집을 담보로 몰래 대출을 받았는데 그 돈을 갚지 못해 온 식구가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다는 것이다. 돈을 구하러 백방으로 알아보던 아버지가 속상한 마음을 술로 달래셨고 새벽녘 귀가하시다가 대타로 일을 나온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에 치여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근 가까운 병원에 엠뷸런스로 실려가신 게 아니고 버스와 협약이 되어있는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사고를 낸 버스에 실려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달려 도착해서 수술을 하셨는데 이미 뇌 쪽에 심각한 출혈이 있어 머리를 열었다가 그냥 다시 닫았다는 상황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갑작스레 잃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님의 목숨을 대신해 받은 합의금으로 밀린 대출금을 다 갚을수 있었고 집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고 했다.
우리 가족은 작은 하얀 리본이 달려있는 머리핀을 꽂고 하얀색 소복으로 환복을 하고 아버지가 세례를 받으셨던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리고 서울과 의정부 사이에 있는 샘내에 있는 장지로 장례버스를 타고 모두이동을 했다. 그 당시 생긴 지 얼마 안 된 천주교 묘지는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다. 형식과 절차가 복잡한 듯 어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넋을 잃은 어머님은 몇 번을 까무라 치시며 목쉰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셨다. 모두들 슬픔에 잠겨 울고있었지만 나는 울지 안았다. 눈물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멀뚱 거리는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니 슬픔에 젖어계시던 어머님이 대뜸 내 뺨을 때리셨다. 처음 맞아보는 상황에 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보시며 어머님이 소리치셨다. "어떻게 니 아빠가 죽었는데 넌 울지를 않아? 아빠가 너를 제일 많이 사랑했는데 어쩜 눈물 한 방울을 안 흘릴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다른 가족들이 어머니를 말리고 나를 얼른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밀었다.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그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는 진짜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관이 땅속에 묻히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봐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죽음이란 게 무언지 알 수 없는 나이였기에 그 모든 상황들이 전혀 납득이 안 갔고 아버지의 부재 역시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우리 방은 길가 쪽에 창문이 있었다. 대가족인 우리 집에선 간식을 먹으려면 많은 식구들 것을 사야 했기에 꿈도 꿀 수 없었다. 때문에 아버지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실 때면 가끔씩 고소한 군밤이나 군고구마 아니면 따끈한 풀빵 따위가 든 검정비닐봉지를 들고 길가 쪽 창문을 두드리셨다.우리들만의 시그널이었다. 그러면 나는 얼른 창문을 열고 검정 비닐봉지를 건네 받았다. 검은색 비닐이라 열기 전 까진 내용물을 알 수 없기에 봉투를 여는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밤 문득 창가 쪽 창문을 보다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그제야 다시는 창문을 두드리며 간식을 전해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던 것이다.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다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 그 모든 사실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와 죽음 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원히 이 세상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밤새 너무나 슬펐다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변했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하루 만에 외향적인 성격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변화하고 싶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나의 아버지를 죽음 속에 몰아넣은 작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었을까? 그들에게 성공해서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는 나의 생각을 분명히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깔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내성적인 성격으로는 성공을 이룰수 없을것 같았다.그렇게 나의 첫번째 변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