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식쇼핑, 손에 들린 거대한 화분
식물은 어떤 것이나 참 아름답다 할 수 있겠지만, 그 와중에도 취향이라는 건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많은 식물 가운데서도 유독 꽃나무에 환장하는 것을 본 친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카톡으로 꽃 사진을 뿌려댔다.
어제만도 꽃 사진을 여러 개 받았다. 미스김라일락, 장미 캄파눌라, 물망초, 덴드롱, 동백, 스파티필름, 델피늄, 왁스플라워, 피나타....
친구들의 도움으로 천천히 취향에 대해 알아간다. 좋아하는 색은 파랑이나 보라 계열, 그다음이 흰색. 노랑이나 분홍도 싫지 않지만 빨강은 썩 좋아하지 않아(빨간색 워치와 폰을 사용 중이라 참 의외였다). 그라데이션은 좋지만 전반적으로 단색을 선호해.
너무 큰 꽃도 좋아하지 않아. 작은 애들이 풍성하게 피는 쪽을 더 선호해. 이왕이면 겹꽃을 좋아하지만 겹델피늄 같은 애는 과해. 관엽 베고니아는 취향이 아니었는데 장미 베고니아는 너무 예뻐. 끝판왕은 수국. 절화 취향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게 의외라면 의외다.
문득 예전에 꽃 사진 찍어둔 게 있을까 싶어 사진첩을 뒤지다 옛날 사진을 발견했다.
왼쪽은 어버이날 선물로 엄마께 수국과 함께 드린 캄파눌라. 오른쪽은 식물원 갔다 나오는 길에 샀는데, 백 프로 죽인다며 엄마한테 떠넘긴 캄파눌라와 물망초. 정말 열심히도 엄마한테 캄파눌라를 사다 날랐구나. 그런데 올해 나는 또 장미 캄파눌라를 사고 싶어 드릉드릉하고 있다. 취향이 참 소나무다.
동네 꽃집이랑 온라인 식쇼핑만 해봤다가, 처음으로 화훼단지 같은 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친구들은 남사며 양재에 열심히 다니는데, 어디 갈 곳 없나? 검색하다가 차로 30분 거리에 비닐하우스 화원이 세 집쯤 몰려있는 곳을 찾았다.
온라인샵에서 찾아낸 장미 캄파눌라, 수국 플로린과 페더 사진을 꼬옥 손에 쥐고 넓은 화원을 두리번두리번...
구경은 참 알차게 했지만, 원하던 아이들은 없었다. 빈 손으로 그냥 나올까 고민하다가 마침 해충약을 팔길래 하나 집고, 다육이 코너에서 색이 예쁜 하월시아를 하나 구매했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계산하고 바로 돌아 나와서 아직도 얘 이름을 모른다.
첫 집은 가볍게 훑고 패스, 두 번째 집에서는 하월시아만 구매. 과연 세 번째 집에는 원하던 아이들이 있을까? 이곳은 혼자서 하우스를 네 채 가량 세워두었는데, 시간이 없어 둘러보지도 못하고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얘네 있나요?라고 여쭤보려는 순간, 수국이랑 눈이 딱 마주쳤으니...
정말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수국들이었지만, 그중 하필이면 제일 큰 포트에 앉아계시는 하늘색 수국에 팍! 꽂혀버리고 만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하늘색에 보라 한 방울 섞인 색에다, 겹겹이 풍성한 별 모양 꽃이파리... 플로린이며 페더며 열심히 적어왔던 이름들은 전부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지고 말았다.
만 원 언저리의 포트를 사 와서 고이 기르겠다는 결심으로 들렀는데, 만 원은 무슨- 저 하늘색 겹별수국은 삼만 원이라고 한다. 댄스파티 수국도 온라인에서 사진으로 만났던 것과는 다르게 미모가 물이 올랐고, 아랫단 별수국도 청보라색이 참 예쁜 데다 가격대도 딱이었지만... 나에게는 선택지가 있었으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예산을 크게 초과하고 말았다. 애가 클수록 화분도 또한 비싸진다. 최대한 타협하여 플라스틱 화분으로 선택했다. 물도 많이 먹으니 나쁘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안 죽이고 키울 자신 있으면 데려오라고 선뜻 오케이를 날린 남편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는 화분을 고이 안고, 마침 근처에 있었던 장미 캄파눌라까지 한 포트 골랐다. 보라색 꽃은 없었지만 흰 꽃도 예쁘다 싶어 고민 없이 샀더니 작은 버베나를 하나 끼워주셨다. 보라색 좋아하시나 봐요? 하며 건네주셨는데, 제가 붉은보라는 좀 취향이 아닌데요... 하지만 공짜는 언제나 옳다.
큰 지름의 결과물들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집으로 귀환했다. 베란다에 내놓고 오늘 사온 약도 조금 쳐보고, 수국한테 물도 주고. 행복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수국을 안 죽일 수 있을까? 비싼 몸인데! 에이 잘 클 거야. 원래 큰 애들이 더 안 죽는대. 근데 똥손인 내가 과연...? 결국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최후의 보루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수국 가져가실래요?
맨 처음 이야기에서도 나왔지만, 엄마네 정원에 들어간 수국은 절대 죽는 일이 없다. 몇 배 뻥튀기가 기본이니,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정원이 좁아서 수국 들어갈 자리는 없다며 거절하시던 엄마도, 그럼 어쩔 수 없다며 알아서 키워보겠다고 하니 어쨌든 가져와보라고 말을 바꾸신다. 아무래도 겹별수국의 미모에 단단히 홀리신 모양이다. 대신 나는 겹별수국을 포함한 몇 종류의 수국 삽수를 얻어가기로 했다.
입양 갈 집은 결정되었지만, 언제 친정에 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므로 수국은 당분간 내가 돌봐야 한다. 부디 장미 캄파눌라와 버베나와 함께 예쁜 꽃을 오래 보여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