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잠시 안녕인 절화 이야기
과연 진정으로 꽃다발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실용적이지 않다며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받는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조금쯤은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꽃은 좋아하지만 나도 굳이 따지자면 꽃다발은 돈이 아깝잖아 파였다. 그 돈으로 맛있는 걸 먹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꽃다발을 선물할 일도 없었고, 받을 일은 더더욱 없었고. 졸업식을 제외하면 대학 때 만난 구남친한테 받았던 기억이 마지막인 듯...
엄마한테는 꽃 선물을 그래도 자주 했지만 대부분 화분으로 갖다 드렸다. 원하시는 만큼 심고 키워 오래오래 꽃 보시라고.
신발을 사러 멀리 백화점 나들이를 했던 날이었다. 집에 가려고 지하 식품코너를 거쳐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에스컬레이터 옆에 작게 절화 묶음을 파는 코너가 있었다. 꽃 한 묶음에 오천 원. 만 원도 아니고 오천 원. 그 정도면 잠깐의 행복을 위해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예쁜 꽃에 홀린 듯이 남편을
졸라 한 묶음 집어 들었다. 34살이나 되어서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절화를 산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거침이 없었다. 한 달에 두어 번 근처 꽃집에 가서 오천 원에서 만 원 사이로 절화를 사 왔다. 다이소에서 꽃병도 세 개쯤 사 왔고, 나름대로 열심히 잎도 따주고, 줄기도 잘라주고, 물에 락스도 타 주면서 관리했다. 싱싱하고 오래가는 꽃은 길게는 삼 주도 봤고, 조금 상태가 좋지 않거나 금방 시드는 꽃은 일주일도 못돼서 시들었다. 그래도 기간이 길든 짧든, 꽃들은 언제나 충분한 기쁨을 주고 떠났다.
나는 우연히 처음 골랐던 꽃집 주인 분이 상냥한 분이라, 내키면 깎아도 주시고 덤도 얹어 주시고 자잘한 소재들을 끼워주기도 하셨다. 가끔 이 꽃이 예쁘고 좋다며 강제로 안겨주기도 하셨지만, 매우 만족했으므로 문제는 없었다 :) 단골찬스도 한몫해서 생각보다 만 원 안쪽으로 많은 꽃들을 살 수 있었고, 오래가는 꽃은 다음 절화를 사 올 때까지도 남아 있어서 새로 산 꽃과 섞어 꽂아두기도 했다.
주로 카네이션과 국화가 오래갔다. 관리만 잘해주면 삼 주는 거뜬해서 카네이션을 제일 꾸준히 구매했다. 장미는 오래가진 않아도 특유의 풍부한 꽃잎이 아름답다. 리시안서스도 참 아름다운데, 얘들은 너무 빨리 져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풍성한 꽃이 싫다면, 거베라 같은 꽃을 한 송이, 유칼립투스 등을 한 가지 사서 목이 좁은 꽃병에 꽂아도 심플하고 예뻤다. 스톡과 금어초는 유난히 향기가 좋았다.
지역 카페에 가면, 꽃집에 대한 질문이 가끔 올라온다. 추천글을 읽고 취향에 맞춰 방문하면 꽃집을 고르기가 좀 수월하다. 꽃집으로 검색해 네이버 리뷰를 읽어보는 방법도 있고, 카페가 애매하면 당근 동네생활에서 정보를 얻는 방법도 있다.
나는 정말 우연히 들른 꽃집에 꾸준히 다닌 케이스인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역시나 추천글이 많았다. 지금은 절화 구매를 중단하고 화분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늦게까지 하고 화분 종류가 많은 꽃집으로 옮겨갔는데, 이쪽도 만만치 않게 카페 추천글이 많고 찾아가면 이 동네 드루이드님들을 자주 마주친다.
지금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화분을 진심으로 키워보겠노라 마음먹었으니 절화보다는 꽃화분에 집중하고 있지만, 예전의 나처럼 살아있는 식물을 관리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에게는 절화를 추천하고 싶다. 가끔은 꽃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의 색채가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 집에 꽂을 거라고 말씀드리면 과도한 쓰레기가 될 수 있는 포장지를 줄일 수 있고, 한 두 송이로 비싸지 않게 꽃을 데려올 수 있다. (단, 꽃값이 비싸지는 2월과 5월은 지갑 사정에 따라 구매를 고려하면 좋다.)
집에 꽃다발 하나 들여보시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