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의 습격과 공중뿌리
!!경고!!
벌레 현미경 사진이 있습니다.
식집사 생활을 시작하고 유튜브, 카페, 블로그 등을 많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초보라면 정보라도 많아야지! 사실 모르면 일단 검색부터 질러보는 것이 습관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러다 보면, 가끔 접하게 되는 말들이 있다. 식물에게 이름을 붙여서 매일 불러주고 말을 걸어주면 잘 자란다는 말. 처음 봤을 땐 욕을 들은 양파나 육각수 썰 같은 루머가 여기에도 도는구나, 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본 이 썰의 새로운 해석을 보고 오호- 맞는 말이네!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식물을 집에 데려온 지 이제 꼬박 한 달 되었다.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감성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내가 키우기로 점찍고 데려온 아이들이 죽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무장했다.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쓰다듬어보고, 향기도 맡아보고. 수형을 이렇게 잡을까 저렇게 잡을까 고민했다.
그날의 메인 타깃은 레몬버베나였다. 이파리를 떼고 가지치기를 한 뒤로 애가 제법 안정되어 보였으므로, 좀 더 길게 자란 가지의 생장점을 잘라주기로 했다. 이쯤 컸으면 됐으니 양쪽으로 갈라지는 가지를 내 주렴. 줄기를 잘라내고 이파리를 보는데,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띈다.
또 친구들에게 SOS를 친다. 이거 뭐야..? 설마 벌레야? 그런 거야? 친구들은 흙이 묻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움직이나 들여다보라고 했다. 움직이지는 않는 것 같은데, 흙은 아닌 것 같은걸? 색이 연한 부분이 있어! 으으으...
육안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넘겨 현미경 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벌레 현미경 사진이 바로 아래에!!
그 시커먼 놈은 점박이 응애였고, 알을 잔뜩 낳고 부화한 새끼와 함께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잎에 상처가 군데군데 있다. 구멍이 날 정도는 아니지만... 아니 그 바로 전날에 약을 쳤는데 왜 안 죽고 살아있어...?
응애 가족은 안타깝지만 남편이 알코올소독형에 처한 후 버렸다고 한다. 벌레 개 싫어 인간인 나는 친구들과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들고 레몬버베나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일단 옆쪽 창문에 격리한 후, 약을 치고 물세척을 하고 세제물도 분사해 보고 또 물 분무를 하고 다른 약을 치고 등등... 방제가 대강 되었다는 판단이 서고 나서는 현미경으로 다시 잎 몇 장을 검사했고, 깨끗한 모습을 보고선 다른 식물들 옆으로 복귀시켰다.
레몬버베나는 이파리에 상처가 났고, 아마도 뿌려댄 물로 인해 화상도 좀 입었고, 비교적 약한 신엽들이 도로록 말려 상태가 나빠졌지만, 어쨌든 다행히 응애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틀 뒤, 버베나를 들여다보던 나는 또 비명을 질렀다. 줄기에 이상한 것이 숭숭 나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벌레의 알 같았다. 친구들에게 또 급히 들고 갔는데, 드물게도 뭔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버베나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릴까 잠깐 갈등하다, 네이버 카페를 찾았다. 사진을 올리고 이 이상한 것의 정체를 묻고는 답변이 올 때까지 폰을 붙들고 있었는데, 의외로 빨리 답변이 달렸다.
“이거 공중뿌리 아닌가요...?”
공중뿌리? 그거 몬스테라 같은 애들한테만 나는 거 아니에요...? 글쎄 버베나에도 공중뿌리가 난다는 것이다. 나는 시험 삼아 저 돌기 하나를 툭 떼어 현미경 검사를 하려고 했으나, 돌기는 버베나에서 떨어지자 급격히 말라비틀어졌다. 선생님이 식물 하나를 살리셨어요... 카페의 그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련의 일을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친구들이 나를 칭찬했다. 어떻게 저런 걸 잘도 본다며. 보통 응애는 거미줄이 생기고 나서야 알아챈다고, 그땐 이미 창궐했다는 것이다. 공중뿌리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작은 걸 발견했다고.
식물 이름썰을 해석한 그 콘텐츠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이름 붙이면 애정이 더 가게 마련이고, 말을 걸어주러 한 번 더 들여다보러 오고, 지켜보게 된다고. 자주 보고 관찰하면 무언가 변화가 있을 때 금방 깨닫게 된다고. 자연히 식물도 더 잘 자라게 되겠지? 유사과학에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진리를 담은 말이었다.
식초보인 나는 이름도 붙이지 않았고 말도 걸지 않았지만 근심걱정이 많아 맨날 앞에 가서 잎도 만져보고, 시들시들한 잎은 떼어주고, 물 줘도 될까 자꾸 물주시개를 꽂아보고, 흙을 만져보고 했다. 벌레 무서워 모드가 상시 발동 중이라 이파리도 꾸준히 뒤집어보고 있다. 정말 덕분에 응애를 조기박멸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달을 채운 이제, 예민보스인 애니시다의 언어는 조금 알 것 같다. 꽃봉오리를 매단 꽃대가 꼿꼿하지 않고 살짝 휘면 물을 대령할 때다. 얘는 물주시개도 통하지 않는다. 꽃대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제때 물을 주니, 이제 제법 쌩쌩하게 새 꽃을 피워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덜 예민한 아이들이나 순딩순딩한 아이들의 언어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관심 많이 줄 테니, 잘 좀 커주렴.
덧. 여러 사정이 있어 얼마 전 아래층 아이가 꽃을 사들고 우리 집에 분갈이를 하러 오게 되었다. 이 고운 방울철쭉의 이름은 방울이가 되었다. 이름을 붙여준 걸 보니 잘 키워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