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과 함께 하는 원인 규명
프로개님의 블로그를 알게 된 건, 얼마 전 매우 핫했던 스타벅스 장식 로즈마리를 키워내는 글을 통해서였다. 식초보의 길을 걷자, 마음먹기 전이었지만 워낙 글을 재밌게 쓰시고 키워내시는 식물들도 예뻐서 눌러앉아 이런저런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이 글을 발견했다.
https://m.blog.naver.com/professionaldog/222630305391
0 레벨이라니, 이거 완전 나를 위한 식물..??!??!?
좋아, 페페를 키워야겠어!
그 후 꽃집에서는 구하지 못한 이사벨라페페를 온라인으로 구입해 분갈이를 하고 자리를 마련해 준 게 3일 전, 물을 듬뿍 준 게 2일 전.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 없이 멀쩡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갑자기 이상한 이파리가 생겨 있었다.
정보의 부족을 느끼고 급하게 가입했던 카페에서 열심히 댓글을 달아 마침 등업을 했던 차라 얼른 질문을 했다. 얘들이 왜 이럴까요...? 한 분이 답변해 주셨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떼어내세요. 아... 네... 그렇군요!
초보는 초보이기에 식물이 조금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도 온갖 호들갑을 떨며 걱정의 탑을 쌓는다. 쿨하게 날아온 회원 분의 답변에 그제서 깨닫는다. 아하, 걍 떼내지 뭐- 병이거나 하면 다시 생기겠고 아니면 말겠지. 어쩌면 식물 양육도 아이 키우는 것 마냥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해야 하는 걸 수도 있겠다.
자, 그래서 일단 분리는 끝났는데. 아무래도 외견이 특이한 게 내면에 있는 줄도 몰랐던 탐구심을 막 들쑤시기 시작했다. 마침 집에는 남편이 납땜용으로 사둔 알리발 디지털 현미경이 있었다. 세팅을 해놓거라~ 일러두고 집안일을 좀 하고 있으니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하길래 냉큼 이파리를 들고 달려갔다.
일단 정상적인 면부터 한 번 체크하고, 이상한 부분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마치 엽록소가 사라진 것 마냥 하얗고 투명한 부분. 도대체 왜 이렇게 보이는 거지...? 이렇게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에휴.. 뭐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걸 들여다봐야 알아낼 게 있겠냐- 며 돌아서려다 문득, 단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트나이프는 근처에 보이지 않고.. 그럼 그냥 분질러버리지 뭐! 관엽은 찢으면 되고 다육이는 부러뜨리면 된다. 좋아-
뚝, 하고 반으로 부러뜨린 이파리를 현미경에 들이댔다가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페페를 초록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엽록소들이 전부 이파리 뒷면에 몰려있었던 것이다. 엽록소가 포함된 판판한 층이 맨 아래에 있고, 그 위로 투명하고 촉촉하게 물이 찬 육질이 도톰하게 찰싹 붙어 있어 아래쪽의 초록색을 위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겉에서 하얗게 보였던 그 부분은 과연 단면이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 엽록소층과 육질 사이에 텅 빈 공간이 있었다. 물로 차 있는 육질이 바닥면에서 떨어지면서 그 부분이 초록색이 아니라 하얗고 투명한 색으로 보인 것이었다. 놀라워라. 이유를 찾아버렸네?
현미경과 이사벨라페페와 함께 한 유익하고 즐거운 원인 규명 시간이었고 소기의 성과도 얻어냈지만, 식초보는 아쉽게도 페페 잎 내부에 공간이 생겨버린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감도 잡을 수 없었다(처음부터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파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구경하는 건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단 문제가 생긴 잎은 다 떼어냈으니, 당분간은 재발에 유의하며 자주 관찰해야겠다.
아, 0 레벨이라던 이사벨라페페는.. 주변 이야기와 온라인 경험담을 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쉽게 죽어버리는 모양이다. 그럼 그렇지...ㅠㅠ 프로개님한테 0 레벨이 나한테도 0 레벨일 리가 없었다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