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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Aug 03. 2023

오디세우스의 선택

명분과 실리

어릴 적 자주 보던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에서 나의 최애 영웅 오디세우스였다. 내 또래 친구들은 다혈질의 꽃미남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를 더 좋아했지만, 나는 오디세우스의 차분하고 전술가적인 모습이 더 멋있었다. 결국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도 아킬레우스의 명분 있는 용맹이 아닌, 오디세우스의 실리를 앞세운 지략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행적은 그의 지혜와 끈기를 담은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담겨있다. 괴물과 싸우고 난파당해 표류당하고, 유혹과 자만에 이끌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온갖 고난을 이겨낸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고향인 이타카 섬으로 돌아가, 아내와 재산을 탐내는 저질스러운 구혼자들을 처단한다. 해피엔딩.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와의 대화다. 술 취한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을 묻자 그는 "우티스(Nobody, 아무것도 아닌 사람)"라고 대답한다. 이윽고 거인이 숙취에 절어 누워있을 때 오디세우스 일행은 거인의 눈을 찌르고 도망친다. 비명을 듣고 온 친구들이 "무슨 일이냐"라고 묻자 거인은 "우티스가 날 찔렀어"라고 한다. 아무도 날 찌르지 않았어!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전쟁 영웅이라고 뽐내는 대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실리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빠져나온 뒤, 다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명분을 되찾으려 한다. 그는 오디세우스란 이름을 알려 자기가 원한 명분을 얻었지만,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이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생고생을 하게 된다. 오디세우스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전혀 해피하지 않게 된다.




기원전 8세기에 구전되었다고 전해지는 '오디세이아'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의 보편타당한 정서를 건드리며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뿐인 유한한 생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 오디세우스의 삶은, 고난과 선택의 연속인 우리 삶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삶을 이루는 본질적인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에서는 물론, 기업인과 정치인도 명분과 실리 앞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때로는 명분이, 때로는 실리가 더 원하는 것을 가져오기도 한다. 2천 년 전, 오디세우스는 선택의 순간에서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 그가 선택한 실리에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의 명분은 이름값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이다. 그 명분을 실행할 수단으로써 실리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격동의 2023년을 보내다 보니, 명분과 실리 앞에서 나름 최적의 비율을 찾아 선택한 오디세우스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야말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갖춘,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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