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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Nov 07. 2024

격동의 미국 대선과 트럼프 2.0

양당의 선거 전략 분석과 향후 전망

지난 11월 6일 수요일,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파티에서 [출처: AP통신]
45대 대통령이자 47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특별한 영광을 주신 미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진정한 미국의 황금시대가 시작될 것입니다.

I want to thank the American people for the extraordinary honor of being elected your 47th president and your 45th president.
This will truly be the golden age of America!


131년 만의 비연속적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 연설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그의 연설은 정치적 희망과 민주주의의 위기감을 교차하는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거의 무제한적이라는 그의 신념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선거 유세 기간 그가 정적 처벌을 위해 통치 기관과 군대까지 동원하겠다는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보복'과 '응징'을 공공연히 선언한 전직 대통령의 재집권은 미국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고장난 미국을 고치겠다고 호언장담한 트럼프는 어떻게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을까? 그의 성공 뒤에는 치밀한 전략과 상대의 실책, 그리고 미국 사회 내 위기의식과 변화의 열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트럼프의 후보 수락 연설 직후 무대 [출처: BBC]

22년 중간선거 직후,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퇴장을 요구받던 트럼프는 제3차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 "24년이 되면 상황은 훨씬 악화될 것이고, 유권자들은 달리 선택할 것"이라던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미국 중서부와 선벨트 지역의 핵심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역사적인 정치적 복귀를 확정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트럼프의 성공은 혁신적인 선거 전략에서 비롯됐다. 선대위원장을 맡은 수지 와일스와 총괄매니저인 크리스 라시비타가 주도한 선거 전략은 트럼프 정치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고 체계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트럼프의 즉흥적인 면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도, 미국 선거의 근간을 이루던 전통적 정치 지형도를 재구성하는 혁신적 접근을 시도했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을 공략하는 대담한 전략이 주효했다. 노조원, 임금노동자, 흑인과 라틴계 남성 유권자층을 적극적으로 공략했고, 정치 참여에 무관심했던 소외 계층을 새롭게 끌어들였다. 공화당 계열 슈퍼팩은 디트로이트의 아랍계 유권자들에게 중동 분쟁을 고리로 녹색당 지지를 호소했고, 공화당 유대인연합은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불안을 느끼는 유대인 유권자들을 겨냥해 1,500만 달러의 대규모 선거 자금을 투입했다.



27세의 젊은 전략가 알렉스 브루스위츠가 설계한 새로운 미디어 전략도 승리의 핵심 요인이었다. 코미디언, 운동선수, 조 로건 등 남성 인플루언서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투자자 계층부터 산업 외곽 지역까지 광범위한 남성 유권자층에 접근했다. 틱톡 계정 개설, 맥도날드 방문, 청소차 운전 등 파격적인 바이럴 마케팅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도 사로잡았다.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는 "노조원과 비노조원, 아프리카계와 히스패닉계, 아시아계와 아랍계, 무슬림계 등 모든 계층이 함께했다"며 "상식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인 재편"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승리는 정권 교체를 넘어, 미국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고하는 전환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에어포스 2에 탑승하는 해리스 당시 부통령 [출처: CNN]

이처럼 광범위한 지지 기반 확보의 배경에는 경제적 불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번 대선은 "경제가 선거의 핵심 변수"라는 정치학의 고전적 명제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CNN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현 미국의 국정 운영에 "불만족" 또는 "분노"를 표명했으며, 이 중 60%가 트럼프 지지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행정부 임기 중 발생한 20%의 물가 상승과 7%대의 고금리 기조, 그리고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주택가격은 유권자들의 경제적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연소득 6만 달러 이상의 중산층 중 60% 이상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는 경제 불안이 계층을 초월하여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음을 시사한다. 해리스가 말한 '민주주의 수호'라는 추상적 가치가 '경제적 현실'이라는 구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해리스는 방송에서 치명적인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 ABC 'The View' 출연 당시 "당신이 지난 4년간 대통령이었다면 바이든과 다르게 할 것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떠오르는 것이 없다. (나는) 영향을 미친 대부분의 결정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답하면서, 해리스의 선거 캠페인은 돌이킬 수 없는 궤도에 올랐다. 실제로 해리스는 자본이득세율 인상, 자녀세액공제 확대, 강화된 국경관리 정책 등 차별화된 비전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에 대한 충성도를 과시하려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자적 정책 의제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주요 외신들이 분석한 해리스 캠페인의 실패 요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조직 구조의 문제였다. 바이든의 측근인 젠 오말리 딜런을 캠페인 의장으로 유임한 결정은 내부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고, 오바마의 측근인 스테파니 커터를 중심으로 한 메시지 통제 시도는 캠페인의 역동성과 유연성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 출신 선거 전략가들과 해리스 핵심 참모진 간의 지속된 긴장 관계는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 민주당 선거 전략가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갈등 구조가 해리스의 정치적 역량이 충분히 발현되지 못한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환호하는 트럼프의 지지자들 [출처: AP통신]

출구조사 결과를 심층 분석해보면, 미국 유권자들의 정치적 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느껴진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라틴계 남성 유권자층에서 발생했다. 트럼프는 이 계층에서 20년 23% 차이의 열세를 8% 우위로 반전시켰는데, 특히 65세 미만 라틴계 남성층에서 이러한 지지 기반 확대가 더욱 두드러졌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데이드의 경우, 16년 힐러리 클린턴의 29% 차이 승리가 24년 트럼프의 11% 차이 승리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흑인 남성층에서도 트럼프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흑인 남성 지지율이 20년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 교외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 또한 뚜렷했다. 필라델피아 교외 몽고메리에서 해리스는 60%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이는 바이든의 이전 성과에 비해 2.5%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미시간 오클랜드에서는 트럼프가 기존 지지층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권자층 확보에도 성공하며 지지기반을 확장했다.


J.D. 밴스 [출처: BBC]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젊은 부통령이 될 J.D. 밴스의 당선은 공화당의 미래상을 예고한다. 밴스는 지난 16년 트럼프를 "도덕적 재앙"이라고 비난하고, 사적 대화에서는 "미국의 히틀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었다. 그랬던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보여준 트럼프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그를 트럼프주의의 잠재적 계승자로 부상시켰다. 지난 20년 대선 결과 인증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했던 마이크 펜스의 정치적 행보와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밴스는 세대교체와 함께 공화당의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베스트셀러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가 증언하듯, 오하이오 러스트 벨트의 빈곤층 출신으로 해병대를 거쳐 예일 로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벤처투자가로 이름을 날리며 그는 21세기형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아내이자 인도계 이민자 2세인 우샤 밴스는 공화당이 지향하는 새로운 다양성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밴스의 지지기반은 그가 노동자 계층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교외 중산층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공화당의 미래상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노스캐롤라이나 킨스턴 유세 현장의 트럼프 [출처: AP통신]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첫 임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이제 나는 모든 사람을 파악했다. 좋은 사람, 강한 사람, 약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모두를 알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 과시가 아닐 것이다. 지난 16년 '워싱턴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이제 연방정부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노련한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내부 견제 세력의 소멸이다. 첫 임기 당시 트럼프의 돌발행동을 제어했던 존 켈리 비서실장,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바 법무장관으로 대표되는 '어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트럼프의 극단적 정책을 충실히 이행할 새로운 참모진이 백악관을 채울 예정이다. 이미 하워드 루트닉 캔터 피츠제럴드 CEO를 중심으로 수천 명 규모의 차기 행정부 인선 명단이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젤렌스키와 트럼프 [출처: AP통신]

형사 및 민사 소송의 향방도 주목된다. 대통령의 공적 행위에 대한 면책특권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트럼프에게 법적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특히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주도해온 선거개입 수사는 신임 법무장관 취임과 함께 사실상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러라고 기밀문서 유출 사건 역시 수사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조지아 주의 선거개입 사건이다. 이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주 정부 차원의 기소가 헌법적으로 가능한지를 둘러싼 법리 다툼으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의 외교 정책 급격한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전쟁을 24시간 안에 종결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일부 양보를 전제로 한 종전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다. 푸틴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는 그의 발언은 나토 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함의를 지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이 약화되면 러시아가 더 많은 영토를 장악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지만, 트럼프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 정책에서는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모든 수입품에 10~20%의 관세를, 중국산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정책이 시행될 경우 한국의 총 수출은 최대 448억 달러(약 61조원) 감소할 수 있으며, 실질 GDP도 최대 0.67% 하락할 수 있다.


팜비치 컨벤션에서 열린 유세에 참석한 트럼프 [출처: CNN]


역사가 던진 아이러니가 미국 정치의 새로운 딜레마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4년 임기를 마치는 시점에 그는 역대 최고령 현직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바이든의 연령과 인지 능력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그의 선거 전략은 결과적으로 바이든을 정치 무대에서 퇴장시켰지만, 이제 78세의 고령자인 그 자신이 미국의 국운을 짊어지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졌다.


선거 기간 동안 드러난 그의 정신적 실수들과 예측불가능한 행동은 이미 그의 건강과 인지 능력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정치적 논쟁에 자신을 투영하려는 습관과 정적들과의 끊임없는 대립 구도는 향후 4년간 미국 사회의 정신 건강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이다.


신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을 구하고 위대하게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God spared my life for a reason. And that reason was to save our country and to restore America to greatness.


2017년 "미국의 대학살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끝났다"고 외친 취임 연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가 다시 한번 헌법 수호를 맹세하는 장면은 미국인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트럼프의 '황금시대'가 미국의 새로운 부흥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민주주의의 황혼이 될지는 이제 시간만이 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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