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눈에 예쁜 것이 남의 눈에도 예쁘다
연차를 내고 아침부터 인천지방법원으로 분주히 향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단순한 외출이 아니었다. 오늘은 돈과 기회가 교차하는 진짜 무대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날이었다. 법원에 들어서자 수표와 도장이 든 가방이 갑자기 더 무겁게 느껴졌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법원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각자 서류를 작성하거나 챙기며 이리저리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의자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안에 들어가면 용지 있어요”라고 알려주셨다. 얼핏 학원 강사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용지를 받아 들자 두근거림이 더욱 커졌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준비해 둔 볼펜과 인주, 도장을 꺼냈다. 전날 찾아둔 '입찰표 작성법' 게시글을 휴대폰으로 다시 확인하며 천천히 하나씩 적어나갔다.
숫자 하나라도 틀릴까 봐 손이 덜덜 떨렸다. 첫 번째 표는 도장이 삐뚤게 찍혔고, 두 번째 표에는 숫자가 어긋난 흔적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작성한 세 번째 표에는 숨조차 멈춘 채, 마치 시험지의 마지막 답을 적는 것처럼 한 글자씩 신중히 눌러썼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불안감이 몰려왔다.
‘백만 원만 더 올려볼까?’
수없이 고민이 반복됐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금액을 고쳐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욕심부리지 말자.’ 처음 정한 목표 수익률을 지키겠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도장을 찍고 입찰표를 제출하는 순간까지 손끝이 가볍게 떨렸지만, 제출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법원 복도를 나오자 마치 시험을 마친 학생처럼 머릿속이 멍했다.
후련함과 초조함이 뒤섞여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제 남은 건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법원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사서 테라스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비밀을 감춘 채 묵묵히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간혹 눈이 마주친 사람도 있었지만, 표정에는 쉽게 읽히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몇몇은 여유로워 보였고, 또 몇몇은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시간이 흘러 개표가 시작되었다. 법정 안은 숨소리마저 잦아들었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행관에게 쏠렸다.
11명이라는 응찰자 수가 발표되는 순간, 숨겨왔던 기대가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적은 입찰가가 응찰가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에, 응찰자 수를 듣는 순간 마음은 이미 정리됐다.
예상했던 대로 결과는 나보다 약 2천만 원 더 높은 금액을 적은 여성분이 낙찰을 받았다.
낙찰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작은 기대가 서서히 사라졌다. ‘이번엔 내 차례가 아니었던 거지.’ 고개를 숙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경매장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만족을 느꼈다.
경매가 이렇게 치열하고 복잡한 세계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고, 그 신기함이 여운으로 남았다.
‘이번엔 이만큼 배웠으니, 다음엔 더 나을 거야.’ 생각이 정리되자, 커피 한 모금이 깊은 안도감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