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래블러 Apr 30. 2023

스테판과의 첫 만남 #21

Ep21.│루마니아에서 온 긍정왕 스테판과 인연을 맺다.


아스토르가에 추억을 한 아름 남겨둔 채 오늘도 어김없이 길을 나섰다.



거리에 세워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걷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오자

거리에는 불빛 한 점 없는 어둠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그렇게 가로등의 든든함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무렵

달빛을 보기 위해 자연스레 하늘로 향한 시선의 끝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은 무리 지어 하늘에 빼곡히 수놓인 채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 차가 지나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길가의 가장자리에서 걷던 나의 발걸음은 

길을 잠깐 보는 그 시간마저 아껴 한번이라도 더 하늘을 올려다보고자 

길가의 중간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걸어갔다.

아마 그 순간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이나 처음 별을 보는 아이처럼 나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지 얼마 안 돼 누군가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란색 가방을 멘 스페인 아주머니는 뒤에서 걸어오며 본 나의 모습이 

웃기고 귀여웠는지 인사와 함께 "별이 참 많고 예쁘지?" 하며 말을 건네셨다.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가볍게 인사를 나눈 아주머니는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셨고 

함께 걸어가는 우리보다 홀로 걸어가는 아주머니는 더 씩씩하게 길을 걸어 나가셨다. 


캄캄한 어둠 속 유난히 별이 많았던 새벽의 감성에 젖어들어서 그런지

랜턴을 켠 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가던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우리의 길잡이 요정이 눈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낯선 여행지에서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순간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의지하며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배낭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빛과 발자취에 의지한 채

함께 앞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었다. 



길을 걷다 높은 고도에 있는 마을에 다다를 때쯤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과 산들 사이로 

붉은 태양이 빠르게 떠오르고 있었다. 


앞서 가던 아주머니도 이내 멈춰 서서 우리와 함께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떠오르는 하늘을 보며 가족들, 지인들의 건강과

오늘도 무사히 다치지 않고 걸을 수 있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길을 걷다 배가 고파질 무렵

아기자기하고 따스했던 마을 어귀의 카페에 들어갔다.

따듯한 차를 주문하고 빵 하나를 집어 들고 테라스에 앉아

잠깐의 여유를 즐기다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그 공간에 한없이 녹아들기도 했다. 



이후 깔딱 고개를 지나자 오늘의 목적지인 폰세바돈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마치고 따듯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방에서 동원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스테판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스테판은 이미 동원이와의 대화를 통해 내 이름을 알고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캉!"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동원이가 나오기 전까지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스테판에게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긍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알베르게에는 어느새 우리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간단한 대화를 마친 우리는 우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알베르게를 나왔다.

조그마한 마을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몇 없던 가게들 덕분에 쉽게 메뉴를 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맛있는 냄새에 홀린 듯 피자가게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뒷마당 테라스에 앉아 맛있는 피자와 함께 

디저트로 상쾌한 공기를 한없이 들이마셨다.



연청의 하늘이 짙은 파랑으로 물들어갈 때쯤

오늘도 어김없이 공책을 들고 나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산 밑의 풍경이 잘 보이는 흙바닥에 자리를 잡고 

나무에 기대어 천천히 일기를 써 내려갔다. 

집중해서 써 내려간 일기는 어느새 공책의 밑바닥에 닿았고

그제야 마침표를 찍은 뒤 공책을 덮을 수 있었다.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뒤 

다시 알베르게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저 멀리 산책을 다녀온 스테판이 걸어오는 모습을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을 들어 올려 카메라를 켜고스테판을 찍자

어느새 그걸 알아차린 스테판은 이내 작정하고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와 스테판은 또 한번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후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알베르게로 돌아가 

행복했던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