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래블러 Jun 11. 2023

부엔 까미노 #24

Ep24.│까미노에서 따스한 인사를 나누며 시작하는 하루


저녁을 먹고 나면 엄마와 나는 아파트 근처 천변으로 나가 산책을 즐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천변을 따라 걷다 항상 앉아 쉬는 벤치에 앉기 위해 돌다리를 건널 무렵

어디선가 아이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세 명의 어린아이들은 잠자리채를 들고 흐르는 물가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오늘 아주 화끈하게 놀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집에서부터 챙겨 온 긴 장화를 신고는 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벤치에 앉아 흐뭇하게 한동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새우라도 된 것처럼 한참을 구부정하게 숙인 채 바닥을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는지 이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흥을 주체하지 못한 한 아이는 돌다리 위에서 신나게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본 티 없이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가 우리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분명 해가 거의 다 저문 저녁이었지만 유난히 아이들 주변은 밝고 따스해 보였다.


- "그래, 요즘 아이들은 저런 게 필요해."

엄마와 나의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게 만든 말이었다.


주택에 살았던 나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만큼 

동네 이웃들과 친하게 지냈다. 

등하교를 하다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면 인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당연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옆집에 가져다주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택이 지어졌던 자리 위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웃과의 연대가 느슨해질 때쯤 

서로에게 다가가기보단 경계하고 의심하는 일이 많아지며

세상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맑게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손에는 

어느새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수많은 상상과 모험을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서 

동심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담임선생님의 질문에 

반 아이들은 다양한 직업을 이야기했다. 

경찰관이나 소방관부터 개그맨, 심지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유튜버나 건물주라고 답하는 현실적인 대답이 그저 안타까웠고

어쩌면 어른인 나보다 더 빡빡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애처로웠다.


그래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세명의 아이들이 유난히 반가웠다. 

한참을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 아이들이 훗날 지금의 추억을 자주 꺼내보며 동심을 지켜주길 바랬다. 

분명 지금의 추억들이 언젠간 이 아이들을 지탱해 주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까미노를 걷기 위해 알베르게를 나왔다.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풀어진 신발끈을 다시 조여 메고 있었다. 

그때 우리보다 먼저 오늘 하루를 시작한 순례자가 "Buen Canmino!"를 외치며 지나갔고 

얼른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친 뒤 "Buen Camino!"를 외쳤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사라지지 않은 썰렁한 길거리였지만 

우리가 서로 나눈 인사말 한 마디에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듯해져가고 있었다.


사는 국가도 언어도 다르지만 서로에게 따듯한 인사말을 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길이 너무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요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감정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근처 카페에서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났을 무렵

할머니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백발의 할머니는 홀로 배낭을 멘 채 까미노를 걸어가고 계셨다. 

씩씩하게 길을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언젠간 나도 나이가 들어 문득 나의 20대를 추억하고 싶을 때 

배낭을 메고 이 길을 다시 걷겠다고 다짐했다. 

이윽고 할머니 옆을 지나가면서 할머니에게도 빼놓지 않고 인사를 나누었다.


- "부엔 까미노!(Buen Camino!)"

- "그라시아스, 부엔 까미노!(Gracias, Buen Camino!)"




작가의 이전글 당신 안의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길 바래요 #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