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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Jul 31. 2023

퍼즐 조각 #29

Ep29.│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보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바라보며



이제 이틀 뒤면 지금 걷고 있는 까미노도 끝이다. 처음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는 까마득한 거리에 도착하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어느새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실 산티아고에 다다를수록 여정이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정한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집중할수록 추억은 끊임없이 쌓여갔고, 의식적으로 아쉬움을 억눌러 보려고도 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크다는 건, 그만큼 내가 이 순간에 진심으로 애정을 가졌고 행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까미노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매 순간 느끼는 모든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이다. 분명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애써 부정하고 모른 체 했다면, 내적으로 발산되지 못한 나의 못난 모습은 자연스레 외적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쉬운 마음도 나의 한 부분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조용히 침대에 누워 휴대폰 속 사진들을 들춰보았고, 그동안 써 내려간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추억을 회상하며 웃음 짓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언제 다시 이런 감정을 느끼며 여행할 수 있을까 하며 기약 없는 여정에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히기도 했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숨지 않았다. 그저 그 감정 또한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아르주아에 도착해 알베르게에서 충분한 휴식을 가진 우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저녁으로 폭립을 먹고 나자 그제야 여유가 생긴 우리는 마을을 둘러볼 겸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의 바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대화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 거리의 벤치에 앉아있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곤 곧장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상했던 대로 스테판이었다. 이미 오랜 친구처럼 베프가 되어버린 우리는 인사를 나눈 뒤 자연스레 벤치에 앉아 폭풍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화는 중구난방이었다. 오늘은 어땠냐는 이야기를 서두로, 서로가 아시아인과 유럽인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각 나라의 여행지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지만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 것처럼 장난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지금이 너무나도 좋았다.


현재의 순간이 즐거울수록 그 기억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한참 스테판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 지금 이 순간도 곧 추억으로 변한다는 생각과 얼마 남지 않은 까미노 길에 대한 아쉬움이 다시 한번 밀려왔다.


파워 F인 나는 스테판 또한 같은 생각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 "벌써 이 길이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쉽다. 너는 이 길이 끝나면 뭐 할 거야?"

-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이 여정은 끝나겠지만 이 길의 끝에선 또 다른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럼 그때 가서 다음 퍼즐 조각을 뒤집어보면 돼. 이번 여정은 그저 수많은 퍼즐 조각 중 하나를 맞춘 것뿐이야. 언젠간 이 퍼즐조각을 다 맞출 수 있겠지? 하하!"


스테판은 아쉬움에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간 나는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와...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까. 충격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바짓가랑이를 잡은  놓기 싫어 질질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끈질기게 잡아놓는다 한들  순간에도 시간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쉬움으로 그 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긍정적이고 새로운 설렘으로 가득 채우는 일.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중요한 교훈을 얻은 순간이었다.


스테판과의 대화를 마친 우리는 조금 더 마을을 둘러보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마주치자 재빨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달달하고 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두 덩이를 올린 콘을 받아 들고는 행복한 미소를 한껏 지으며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남기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선선한 저녁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스테판과의 대화에 마음가짐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아쉬운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지금 이 순간의 일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우리 내일도 힘내서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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