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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Nov 25. 2022

모과벌레가 집을 떠나는  순간이 왔다

이제 손돌 바람 불겠고

  


 

   농가에서 행랑채 지붕을 잇고 담에 이엉을 얹는다는 소설(小雪) 절기도 지났다. 해밝았던 계절이 추위를 상접할 때. 마당에 던져진 조간신문이 아침마다 젖는다. 마스크를 벗은 하늘빛은 오늘도 푸근하다. 마당을 돌다 담장 곁에 떨어진 모과를 줍는 노오란 기분을 닮았다. 올핸 모과가 풍년이었다. 일부러 따지 않아도 저 알아서 툭, 눈길을 낸다. 모과로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이 모과주 담그기. 대여섯 개의 유리병을 얼마 전에 샀다. 과실주병이 매년 늘어나면서 우리 집도 차츰 노을이 타고 술 익는 마을로 옮아간다. 이마 주름살이 좀 더 깊어지면, 리어카 하나 장만해 알프스장에 과실주 팔러 나가볼까.

   

노랑노랑했던 담장 모퉁이의 한 철을 지나 모과벌레는 어디로 가나



   한 해를 익어온 모과주 빛깔같이 마당의 잔디가 노래졌다. 잔디의 변화를 제대로 못 느낄 만큼 올 가을은 분주했다. 10월 12일 날짜로 김려원 첫 시집 <천년에 아흔아홉 번>이 모과 빛깔로 출간됐다. 11월 13일 이른 오후엔 '울산 시티 컨벤션 그린나래 웨딩홀'에서 사각사각, 버진로드를 걸었다. 화단에 아직 피어있는 보라과꽃과 분홍과꽃 빛 한복세트로 두 여인이 나란히 촛불도 밝혔다. '시어머니'라는 새 이름을 공손히 받으러 걸은 길은 길고도 짧았다. 예식 전날 밤내내 비가 내려 걱정이었는데 아침에 맑게 갰다. 상쾌한 하루였다. 예식은 첫 경험에 걸맞게 실수가 잦았다. 경삿날이었으니 실수도 즐거운 해프닝으로 기억되겠지.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김려원도 시집을 내고, 시집오는 며느리를 맞게 되었다. 친근과 낯섦의 경계선을 줄타기하는 '시어머니'라는 낱말. 묘하다. 하와이로 여행 간 신혼부부가 사흘 전 밤늦게 귀국했다. 소설의 밤에 눈이 아닌 비가 내렸고, 새 가정 새 아침의 너른 창이 하늘빛으로 열렸다. 두 젊은이의 백년언약 입구가 청명하다.


김려원 시집 <천년에 아흔아홉 번>이 노랑노랑 모과빛으로 출간되었다.


사랑스러운 두 자녀가 새 가정을 꾸렸다. 이 순간처럼 모든 나날이 어여쁘길...



   환한 볕살을 쫓아다닌 청계 3대도 저들만의 희로애락 일상을 이어간다. 8월생인 3세대 개구쟁이 청계 네 마리는 어느새 중닭이 되었다. 한 마리가 수탉인지 아래턱에 붉은 수염이 자란다. 6월생 2세대 두 마리는 11월 초에 첫 알을 낳았다. 알을 낳을 때의 울부짖음이 매일 도동마을을 쩡쩡 울린다. 작은 몸의 산통이 얼마나 고될까. 식구 된 지 1년 반인 1세대는 텃밭 산책을 멀쩡히 하다가도 어둠이 내리면 스스로 횃대에 오른다. 볕 좋은 시월을 자신의 털빛만큼이나 컴컴하게 지낸 검은 닭 에우로페는 결국 부화를 포기한 채 둥지에서 내려왔다. 깃털이 거의 빠지고 바싹 말라서 차마 못 볼 지경이다. 제일 큰 덩치에 눈매도 매서운 장닭 제우스는 변함없이 가장 역할에 충실하다. 식구의 울음이 남다르면 어디서든 짱가처럼 날듯이 달려서 상황을 살핀다. 종종 눈을 부라리며 사람에게 대드는 도도함은 오히려 당당함일 터. 그런 제우스가 흘 전 밤, 그 위세를 꼬꾸라뜨리고 말았으니.




   죽음의 순간이 어둔 박스에 담겨 어딘가로 내달렸던 것이다. 저승문이 열리기 직전, 나의 슬픔이 제우스를 되돌아오게 했다. 사형수였던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도 총살 직전에 형이 감형돼 살아났다. 제우스도 그런 경우였겠다. 아무리 가축이라지만 그간 쌓인 정을 말 한마디 없이 끊어내고 데려간 이, 누구인가. 내 원망을 못 견딘 그가 제우스를 원래의 자리에 데려다 놨다. 흐린 불빛을 비추니 힘없이 꼬꼬거리다 횃대에 오른 녀석. 또 울컥했다. 다음날 아침에 닭장 문을 열어주며 "제우스야, 살아와서 고맙다!" 한 번 힐끗거리곤 텃밭으로 달아나버린다. 소가 죽음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듯 제우스도 그랬으려니. 동서네로 간 2세대 어린 목숨 하나는, 수탉이 두 마리라는 연유로 시어머님의 점심 식탁에 얹혔다. 어떤 생명체이든 명약관화한 목숨의 길. 필시 닥쳐올 일이겠으나 생사여부가 사람 손목에 걸린 여림이라니.  


볕 좋은 가을 동안 3세대 네 마리는 중닭이 되었고, 2세대 두 마리는 매일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알을 낳아준다.

   테니스 엘보를 치료한 2년간 부엌살림을 맡아주고, 뱀을 잡아 먼 산에 넣어주고, 적막한 시골살이의 밤에 넉넉한 술친구도 돼준 둘째. 길었던 취준생을 졸업하고 내주부터 출근한다. 면소재지를 떠나 구소재지로 들어가니 다시 도시인으로 컴백하는 건가. 주말 모자지간이 될 테지만 기쁨의 헤어짐이다. 20대의 빠른 손놀림과 입체적인 두뇌회전이 곁에 없으면 답답한 일이 많아지겠다. 전원살이는 느긋해야 제맛이지만 이도 저도 내겐 역부족이다. 그대 젊은이의 앞날은 한창 속 차는 배추와 무 같기를. 닦을수록 향기로운 모과 같기를. 눈발 속에서도 푸릇푸릇 노랑노랑 퍼져 나는 햇발이기를.     


낮은 기온에도 아랑곳없는 짙푸른 생명력은 그저 신비할 따름이다.



   자녀가 새로운 가정을 이뤘으니 머지않아 도동마을의 한 부부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될 테다. 자연도 사람도 주야장천 변화하지만 아이가 뛰노는 세상만큼은 무릉도원이라고 믿는다. 푸른 잔디마당이든 모과빛 잔디마당이든 맘껏 자연을 호흡하는 손주 아이를 상상하니 미소가 절로 번져 난다. 창밖에 고개를 내미니 햇살과 바람 한 점이 쾌청하게 지난다. 옷을 자꾸만 벗고 있는 정원과 텃밭의 나무들을 하나하나 안아봐야겠다. 다시 푸른 봄날을 채워가고 있는 속내가 문득 궁금하다.                   

     

노란 국화도 구기자 열매도 올림푸스산의 청계 12마리도 이제 추위에 들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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